본문 바로가기

다녀온 山들

뒷간에서 출산한 어머니의 불편한 진실

SensitiveMedia  

뒷간에서 출산한 어머니의 '불편한' 진실


뒷간에 대해서 모르시는 사람 딱 두명(혹 자신이 아닌지요? ^^)만 빼 놓고 아는 사람은 다 알 것 같아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만, 뒷간은 요즘 '화장실 toilet'과 달리 순전히 응가(?) 전용입니다. 똥 누러 가는 곳 말이죠. 그곳을 어떤 사람은 '똥두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유식한 척 하는 분들은 '해우소'라고 하기도 하고 '통시'라고도 하는가 하면 '측간' '서각' '변소' 등으로 일컫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름을 붙여도 공통적인 볼 일은 똥 누러 가는 곳이지요. 물론 소변 포함해서요. 똥이라는 어감이 싫으시다면 '대변'이라 고쳐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 몇자 끄적이지 않았는데 글 속에서 불길(불결이 아님)한 냄새가 진동하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수 씨(가명을 써야겠습니다.)는 그림속 다 쓰러져 가는 양철지붕의 오두막을 가리키며 저곳이 뒷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씨~익 웃으며 "울 엄마가 저기서 날 낳았데~요. ^^" 라고 말하며 겸연쩍어 하기도 했습니다. 묻지도 않은 말을 한 동수씨에게 그림속의 뒷간은 볼 일을 보고 꼭 뒤를 닦지 않고 나온 것 처럼 유년 시절을 괴롭혔던 것이죠.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다리 밑에서 줏어 왔다'라는 표현과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제게도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놀려 주려고 한 말이지만 이 말을 듣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심각해져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ㅜ...엄마...나...진짜 다리밑에서 주어왔어?..." 하고 궁금증을 풀려고 할 때 엄마가 "...진짜야!..." 라고 말하면 얼마나 서러웠던지...동수 씨가 하는 말은 그런 표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에이...그럴리가!..."

"참네!...진짜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수 씨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전 그가 이곳 뒷간에서 태어날 당시 요즘 처럼 119가 있었겠어요? 아니면 가까운 곳에 산부인과가 있었겠어요? 당시 부연동의 가구수는 70여가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아이를 받는(출산) 사람은 조산소(조산에 지장이 없는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으로 요즘 산부인과 역할을 맡음)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거나 아이를 잘 받는 어른(대개 할머니)들이 출산을 거들었습니다. 요즘처럼 자동차가 있었다고 해도 가까운 주문진 까지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자동차로 막 밟아 달려야 30분만에 도착하는 거리에 있으니 애시당초 그런 일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출산이 임박하면 그분들에게 연락을 하여 산통이 있는 즉시 달려와서 출산을 도왔지만,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출산을 하고 또 어떤 여성은 버스나 택시를 타고 출산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아이를 낳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도 아이를 낳았으니, 당시 이런 출산 모습은 즉각 화제가 되어 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하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동수씨의 주장에 동의(?)하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동수 씨는 어느날 산통을 느낀 어머니께서 산통을 착각하여 볼 일 정도로 여겨 뒷간에 가셨다가 집에서 10여미터 떨어진 뒷간에서 산고를 치르며 혼자서 외롭게 출산 고통을 참으며 동수 씨를 낳았던 것이죠. 아울러 동수씨는 남다른 탄생의 기쁨을 맛 보았을 뿐만 아니라 보통의 아이들이 맛보지 못한(?) 뒷간 냄새를 듬뿍 받으며 마치 바이블 속 성자의 모습처럼 오지중의 오지...그것도 뒷간에서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 처음 동수씨가 겸연쩍어 한 표현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릴 것 같더군요. 지금에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사정을 감안하면 기막힌 사연이었습니다. 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수 씨의 어머니는 금년에 77세로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여전히 옥수수를 따거나 동수씨가 운영하는 민박집 일을 거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셔서 해가 뉘엿거릴 때 쯤 동수씨를 잉태했던 집에서 머리를 뉘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피곤하시지도 않느냐고 물었더니 "...놀면 뭘해?"라고 즉각적인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동네 구경 시켜준다는 동수 씨 뒤를 졸졸 따라갔지만 동네라 해봐야 예닐곱 가구나 될까요? 그나마 사람이 사는 곳은 몇가구 밖에 안되는 이곳이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불리우는 부연동에서 동수씨 어머니께서 6남매를 키우신 곳입니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아이 대여섯명 정도 키우는 일은 예사여서 여섯명은 '식구 축에도 못 끼는' 숫자였습니다. 저흰 7남매였으니 말이죠. ^^ 돌이켜 보면 저희를 키운 어머니나 동수 씨를 키운 어머니나 꽤 오래전의 어머니들 께서는 위대하다 못해 거의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아이들을 양육 했습니다. 도시에서도 아이들을 키우기 쉽지 않은데 어머니는 이곳에서 주문진 까지 하루종일 걸어서 산나물 등을 머리에 이고 내다 팔았고 평생을 화전 밭을 일구며 살아 오셨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6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남자였던 동수 씨는 늘 장에 갔다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야속한 경고를 떠올렸는데, 먼 길을 따라 나서려는 철없는 동수를 떼 놓으려고 "...이 눔아...또 따라오면 '뒷간에서 데려온 놈'이라고 한다?!" 라는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던 것입니다. 어머닌들 어린 동수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만 어머니는 동수를 그의 누나나 동생 보다 더 아꼈고 애지중지 키웠던 것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키운 동수 씨는 부연동 골짜기에서 주문진으로 유학을 갔고, 어머니 호강 시켜볼 요량으로 서울에서 작은 사업을 하다가 다시 부연동으로 돌아온 것은 당뇨병 때문이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당뇨지수 620'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와 함께 '산으로 가라'는 말도 안되는 처방을 하자, 동수 씨는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를 다시 찾았을 때 어머니는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동수 씨 보다 더 놀란 것은 자나깨나 동수 씨를 위해 신령님께 빌었던 어머니였죠. 그가 초췌한 모습으로 부연동으로 다시 돌아와 소리없이 흐느끼며 바라보았던 곳이 바로 뒷간이었습니다. 저는 민박집 가게 앞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있는 어머니 곁에 다가가서 어머니 어깨를 주무르는 척 하며 동수 씨 이야기를 밑천으로 나직히 물어봤습니다.

"...어머니...아들하고 사시는 게 좋죠?..."

"...그걸 말이라고 해요?...요즘 호강해요...좋고 말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수 씨 어머니는 제가 동수 씨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안 사실을 알 까닭이 없었습니다. 동수 씨는 의사의  극약 처방(?)에 따라 매일 같이 산으로 오르며 몸 관리를 하여 일반인들과 같은 건강을 되찾았는데, 해가 다 떨어질때 쯤 하산한 동수 씨는 어머니 곁에서 말을 건네는 저를 보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의미있는 웃음이었죠. 동수 씨에게 제가 건넨말은 '동수 씨가 뒷간에서 태어난 게 사실인지' 어머니께 확인해 보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아들은(동수 씨) 어디서 태어났어요?..."

"여그서...부연동서 태어났지...어디서 태어났더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연동 말고요...뒷..."

"(버럭)...얼라를 누가 뒷간에서 낳더래요?!!..."

동수 씨 어머니 께서는 '뒷'자도 떨어지기 전에 버럭 소리를 지르시며 하나뿐인 아들을 뒷간에서 낳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긍정하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뒷간은 아이를 낳는 장소가 아니라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고 계셨던 것이죠.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화기애애 하던 분위기는 금새 찬물을 끼얹은 듯 했습니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어머니 손길이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동수 씨가 저만치서 키득 거리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SensitiveMedia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