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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흑백사진 속 '그리운' 청양에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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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사진 속 '그리운' 청양에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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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에서 오후 시간 대부분을 보내고 밭두렁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앞으로 걸어오는 중절모를 쓴 신사가 눈에 띄었다. 얼핏봐도 그는 칠순이 넘어 보이는 나이였다. 그는 밭두렁 외길에서 나와 마주치며 카메라에 관심을 보였다. "카메라가 좋아 보이는데..." 그러면서 구룡마을에 온 봄 풍경을 마저 담아가려는 나를 향해 "잘 찍어줘!..."하는 부탁을 했다. 자신도 한때 사진에 심취했다며 현상액 이름을 늘어 놓으며 오래전 학창시절을 떠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나는 연행(?)되는 범죄자처럼 그의 팔에 이끌려 그가 가고자 하는 움막집에 들렀다. 그는 내가 마음에 든다며 소주를 한잔하자고 했지만 이미 막걸리 몇잔을 마신 터라 사양했지만 기어코 소주 두병과 사과 두어개를 사 왔다. "...뭐하는 사람이요?" 사진 몇장을 찍어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있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고 몇번이나 이야기 했는데 멋쟁이 노인은 했던 말 또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하며 양복 안주머니 지갑에서 사진 한장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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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청양에 달밤'이 선명한 흑백사진
 
함께 자리한 윤노인께서 그 사진을 받아들고 노인의 주문에 따라 잘 찍어주길 바라며 내 코앞으로 사진을 갖다 놓았다. "이게...그리운 청양에 달밤이야." 그는 단기 년도가 선명한 사진속의 자신을 가리키며 50년도 더 된 세월 저편에서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찍은 모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이곳 구룡마을 움막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속절없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 속에는 현실속의 자신을 부정하는 모습도 포함된 듯 "...한달에 10만원이면 살아갈 수 있었던 이 마을이 너무도 고마웠지!..." 그는 팔순 윤노인이 살고있는 움막집으로 나를 먼저 구속(?)시킨 후, 극구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주 두병을 사왔던 것인데, 그사이 중절모를 쓴 멋쟁이 노인은 오가는 길에 자주 만나곤 하는 할머니 한분에게도 기별을 하여 밭뙈기 곁에 만들어 둔 움막으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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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가 중절모 쓴 멋쟁이 노인의 학창시절 흑백사진

잠시후 몸을 겨우 틀어야 앉을 자리가 만들어지는 이곳에서 나는 구룡마을에서 부르는 아리랑과 같은 '그리운 청양에 달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뭐해?!...기생년처럼 홀짝 거리지 말고 쫘악 들이켜!..." 아까부터 잔만 받아들고 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내게 윤노인의 호통이 이어진 것이다. 사람사는 이야기는 궁궐에 살던 움막집에 살던 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댓글이라고 함부로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도 있었다.그러나 '카더라 식'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추론하는 것과 달리,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열고 앉아서 이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의외로 이분들의 가슴아픈 사연에 몸 둘바를 모르곤 한다. 내가 윤노인의 호통에 급히 들이킨 소주 한잔 속에 청양의 달빛이 가득 녹아있었음은 물론이다.

BlogIcon NK 2009/04/15 02:51  

작년여름에 사진작업을 일주일 정도 했었습니다. 양쪽 자치회관 간부(?)분들과 인터뷰도 했었구요. 구룡마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더군요..구룡마을은 지금 두 방향으로 나뉘어져있는걸로 압니다. 그 중 철거당하며 부상당하는 쪽은 힘없는 쪽이고 다른쪽은 힘이 없지않습니다..마음과 머리가 많이 복잡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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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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