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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서울'을 디자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서울'을 디자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날 세계속의 '서울'을 디자인 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한것은 '서울 디자인 올림피아드 2008' 행사를 직접 참관 하면서 생긴 물음이다.

아마도 이 물음은 세계속에서 서울 디자인올림피아드를 선 보인 서울이 궁극적으로 늘 되물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주지하시다 시피 오늘날 서울이 있기 까지는 적지않은 고뇌섞인 세월이 흘렀고 그 세월을 500년 도읍지를 넘어 오늘날 600년의 고도를 만든 '서울'을 있게 만든 한 디자이너(?)의 공로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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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디자이너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져 왔고 이 세상은 태초에 위대한 디자이너인 '창조주'로 부터 디자인 된 세계라는 것을 부인하거나 시초를 잘 모르는 사람은 디자인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 더 해야 될지도 모른다.

세상은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인 바이블에 의할 것 같으면 일주일에 걸쳐 완성되었고, 일주일 동안 완성된 세계가 오늘날 우리가 오감으로 체험하는 세상인데, 그 세상속에서 인생의 삶을 도왔던 최초의 디자인이 에덴동산이며 그 동산에 디자인 한 사과Apple 조각 때문에 인류의 삶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삶을 살게 되었다고 '바이블'은 전한다. 한 디자이너의 야속한 '드로잉'이 인류의 삶 전체를 구속하고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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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서울을 만든이는 누구일까?...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태조 이성계라는 사람이다. 그는 335년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났고 어느 날 이자춘이 꿈을 꾸었는데,...꿈 속에서 하늘에서 오색 구름을 타고 선녀가 내려왔다. 그 선녀는 이자춘에게 절을 하고 "천계에서 그대에게 내리는 것이니,... 장차 이것을 동쪽 나라를 측량할 때 쓰십시오"라며 소매 속에서 침척(바느질에 사용하는 자)을 꺼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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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춘이 그 자를 받은 뒤에 부인 최씨는 임신을 하였고, 13개월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은 용과 같았고, 눈은 봉황처럼 부리부리했다고 한다. 그 아기가 바로 이성계라고 말하는데,...그를 놓고 조선을 만든 최초의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오늘날 '서울'을 만든 '디자이너'라고 생각해 본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이성계 디자이너(?)는 서울을 천년 도읍지로 삼기전에 오늘날 북한에 속한 '개성'을 도읍지로 삼고 있다가 개성은 100년도 채 못되어(편집자 주) 망할 수도로 생각하여 미래의 세계속에 유일하게 강과 산과 벌을 끼고 있는 최고의 도읍지로 서울을 선택한 것이며 마침내 숫가락 몽댕이 하나까지 다 챙겨 서울로 이사를 한 것인데 그 전에 한 일이 바로 '서울을 디자인'한 참으로 놀라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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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은 이렇듯 한 디자이너의 의해서 운명을 좌지우지 할 만큼 단순 하면서도 복잡하고 미려하게 발전해 왔으며 한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지 못한 삶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네 모습인데, 세상을 잘 만들거나 서울을 잘 디자인 했다 손 치더라도,

그 디자인 속 삶의 모습은 다시 디자인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별의 별 몸짓을 다하고 살았으며 놀랍게도 '이성계 디자이너'의 설계속 수도 서울은 좌충우돌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날 이성계디자이너가 만든 서울속에 살고 있었던 나我 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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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디자인 올림피아드 2008'을 참관 하면서 나는 서울의 한 구석에서 우리네 삶을 윤택하게 했던 박씨(김씨면 어떻고 이씨면 어떠랴)가 한 '전시관'에서 나를 부드럽게 째려(?)보며 내게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사진속의 그가 말을 한다고 믿는 사람은 디자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고 그가 단 한장의 사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술한 이야기가 말짱 꽝이다.^^

박씨가 처마밑에 펼쳐둔 것은 고무신이고 낡아 빠진 주방용품이다. 그 중에는 양은냄비도 있고 별의 별 취사도구가 있었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도구들인데 유독 이 전시관에서 강조한 부분이 '쌀 부대'였고 '고무신'이었다.

지금이야 유명 상표로 얼마든지 뻐기며 무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박씨가 이 가게를 지킬 때만 해도 저 고무신의 위상이란 이봉주가 신은 마라톤화 못지 않았고 고무신에 수 놓은 디자인은 금순이의 가슴도 벌렁거리게 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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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 디자인 올림피아드 2008'이 내 가슴에 쏙 다가 온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서울을 디자인한 조선왕조가 있었고, 그 속에 위대한 한 디자이너가 꿈을 펼치고 있었는가 하면 나는 태초에 세상을 디자인 한 '창조주'가 디자인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디자이너의 피를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디자인에 대한 재능을 타고 났으므로 자신이 생각해 낸 디자인과 비교해 볼 시간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로 부터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가 발전되어 왔다. 1인 미디어의 세계도 그와 같지 않을까?...태조 이성계가 1,000년 도읍지로 오늘날 '서울'을 택했듯이 보다 긴 안목의 '블로거 미디어'를 디자인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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