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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수원화성,가을에 꼭 가보고 싶은 단풍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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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단풍이 아름다운 명소
-1편,가을에 꼭 가보고 싶은 단풍 명소-




"수원화성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0월 9일 거행된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 이후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한 달 여만에 다시찾은 수원화성은 몰라보게 달라져있었다. 불과 한 달 여의 시간이 수원화성을 알록달록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 그런데 화성을 둘러싼 단풍들 대부분은 잎을 떨군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주만 더 빨리 찾아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팔달산 회주도로를 따라 걷는동안 그런 생각은 금새 사라졌다. 단풍이란 언제인가 떨구어야 할 세속의 욕심이나 욕망같은 것이라면, 미련없이 벗어던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상일은 늘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더하게 되는 법. 가식을 주렁주렁 매단 것 보다 자기의 본 모습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허전한 마음도 잠시 금새 수원화성의 품속으로 빠져든다. 


가을에 꼭 가보고 싶은 단풍 명소





수원화성은 가을에 꼭 가보고 싶은 단풍 명소이자 수원화성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조모부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해 지는 곳. 수원 팔달산 회주도로를 따라 걸으면 보물 제403호 화서문으로 다가서게 된다. 맨 처음 등장한 그림 속에 화서문이 등장하고 왼편으로 보물 제1710호인 서북공심돈이 빼어난 모습으로 반기는 곳.  





팔달산 회주도로가 시작되는 수원향교 뒷편에서부터 장안문까지 이어지는 단풍명소를 걷다보면 바쁘게 살면서 소모된 감성을 재충전할 수 있는 아름답고 고즈녁한 곳. 가을은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비움의 미학을 가르쳐준다고나 할까. 남포루에서 뻗어나온 성곽위에서 내려다 보니 조금전 걸었던 회주도로 아래로 아침운동에 나선 한 시민이 회주도로를 따라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




예술품으로 다가온 남포루


수원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해 만든 남포루를 비롯해 서포루,북서포루,북동포루,동포루 등 5개의 포루(砲樓)를 만들었는 데 서포루의 규모만 약간 작고 4개의 포루는 규격이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루는 3층으로 지대 위에 혈석(穴石,대포발사를 위해 구멍을 뚫은 돌)을 전면에 두 개,좌우 3개씩 놓았다. 그 위에 벽돌을 쌓았고 안쪽으로 판자를 잇대어 2층으로 구분하였으며, 총혈 15개를 만들었다. 




지대 위에 뚫은 혈석은 포루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상루에 문루 세 칸을 만들어 총안과 전안을 뚫어 놓았고, 처마는 납도리 홀처마에 우진각지붕이다.남포루는 팔달문에서 화양루(서남각루)에 이르는 방어역할을 맡았다. 회주도로를 따라 수원화성으로 들어가는 홍예문에 들어서기 전 숲 속으로 바라본 남포루는 포루라기 보다 아름다운 건축물로 다가왔다. 




만약 지난 주말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면 남포루의 진면목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뭇잎을 떨군 숲이 여행자에게 선사한 선물이랄까. 남포루는 팔달산 남쪽 중턱의 팔달문과 서남암문 사이에 위치해 있는 데 팔달산 회주도로가 그곳을 관통하고 있는 것. 남포루는 1796년 7월 9일에 완성되었으며 3,203냥의 비용이 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성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환하게 반기는 단풍들. 이 숲 너머로 남포루가 위치해 있다.





수원화성을 아끼는 사람들


그리고 남포루로 다가가 성곽 위에서 내려다 보니 멀리 지동 제일교회의 '노을빛 전망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또 오른쪽으로 팔달문(남문)이 보이고 주말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동시장이 보인다. 수원화성은 팸투어를 통해 자주 찾은 곳이기 때문인 지, 수원으로 떠날 때 마다 친정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수원화성은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가 다양하고, 무엇 보다 대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각박함을 찾기 쉽지않다. 인구 120만의 대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수원화성 주변의 인심은 넉넉하다.




이날 아침 회주도로의 화성열차승차장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너무 일찍온 까닭이다. 하지만 회주도로를 따라 걷는동안 사색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넉넉해 지는 것. 수원화성을 방문 할 때마다 반겨준 얼굴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팸투어를 진행한 수원시 SNS팀(팀장 이엽희)의 주무관 장명실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


"...어떡하죠?...내일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는 데...ㅜ"




필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 가을비를 예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때 아닌(?) 바람까지 불고있었다. 이대로 한 주를 더 보내고나면 단풍은 우수수 다 떨어질 게 분명했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 씨의 염려는 현실이 되어 다음날 아침 주변의 은행잎이 모조리 낙엽으로 변하고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주도로 곁의 참나무는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정조대왕의 연보


그리고 숲속으로 드러난 화성행궁을 보자 단풍 보다 더 알록달록한 추억이 금새 되살아나는 것. 수원화성은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이후 정조대왕은 능행차를 통해 수원화성으로 13번이나 납시었다. 그 때 마다 머문 곳이 화성행궁이었으며, 이곳에서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과 정조대왕 친림 과거시험 등 잔치가 성대히 열리곤 했던 유서깊은 곳이었다. 수원화성과 어우러진 단풍도 아름답거니와 우리가 잊고 살던  정조대왕의 야망 혹은 슬픔과 아름다운 효심을 되살리는 역사가 없었다면 '앙꼬없는 찐빵'같은 느낌이 들지않을까.




팔달산 회주도로 곁에는 정조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세워졌고, 주말을 맞이해 외국인들까지 찾았다. 왕께서 내려보고 계신 곳은 수원화성 행궁 쪽으로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의 희생양이 된 백성들을 굽어 살피는 듯한 모습. 수원화성의 성곽을 표현한 현대적 조형물로 만들어진 정조대왕 동상 곁에 <정조연보>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정조대왕의 연보를 보고 있자니 눈에 띄는 게 몇 곳이 있었다. 1762년(윤 5월 13일)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별세한 사실과, 1795년 대왕의 나이 44세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으로 능행차에 나선 기록. 1997년 수원화성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이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단풍길을 걸으면서 수원화성에 깃든 정조대왕의 비하인드스토리가 늦가을이 풍기는 기운 보다 더 애닯게 다가오는 건 또 무슨 이유인 지. 회주도로를 따라 '서일치'에 다다르자 정조대왕의 야망과 슬픔을 닮은 왕벚나무 잎이 피빛으로 물든 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꼭 가 보고 싶었던 수원화성 억새밭


서일치의 '치(雉)'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로,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경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수원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꿩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본다'는 까닭에서 따온 이름인 데 만추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 서일치 부근의 억새밭이었다.




필자가 어느 가을날 수원화성에 단풍놀이를 나온다면, 꼭 가 보고 싶었던 명소가 서일치,서북각루,화서문쪽 성곽 아래에 피어난 억새밭이었다.




나무 한 그루와 서일치의 깃발 하나...그리고 나...불과 200 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정조대왕은 시간 저편에 있고, 한 여행자는 다시 왕께서 머물렀던 화성의 한 모퉁이에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세상은 정조대왕께옵서 화성을 축조할 당시의 정국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도 않아, 국민들이 아예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 거짓을 밥 먹듯 입에 달고 살고 진실을 악착같이 묻어버리고자 하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서 대왕의 업적을 돌아볼 때 마다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나뭇잎 몇을 힘겹게 달고 서일치를 바라보고 있는 나무 한 그루와 주인 잃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니 불현듯 외로움이 밀려든다.




또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 사이로 보이는 텅빈 서북각루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지...




각루(角樓)는 성곽의 돌출된 요지 중 비교적 높은 위치에 누각을 세워서 성곽 주변을 감시하거나 병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물로 수원화성에는 4개소가 설치되었다. 서북각루(西北角樓), 동북각루(東北角樓, 방화수류정), 동남각루(東南角樓), 서남각루(西南角樓, 화양루) 각루 4곳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것.




그 아래로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며 바람에 흩날리며 서걱이는 곳. 단풍 삼매경에 빠져들 줄 알았지만 억새 삼매경에 빠져들며 걸음을 멈춘 곳은 서북각루 아래였다. 수원화성의 가을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서북각루 주변의 억새군락지였던 것.




억새 사이로 바라본 서북각루에 누군가 올라서 화서문쪽을 바라보고 있다.





수원화성은 거대한 예술작품


조금 전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억새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곳. 이런 일렁임은 최소한 200 여 년동안 썰물과 밀물처럼 쌓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것. 그 한모퉁이에서 또 하나의 나이테를 만들며 시간을 과거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억새를 올려보다가 다시 성곽으로 다가서니 서북각루가 세상을 굽어보는 정자처럼 넉넉하고 기품있어 보인다. 각루는 적의 침입을 방지하지 하고 쉼터로 사용했다지만, 오늘날 서북각루는 도시인의 스트레스를 정화해 줄 빼어난 예술작품 외 더도 덜도 아닌 듯. 화성 전체가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서북각루가 바라보이는 성곽 아래에 달맞이꽃이 마중을 나온 것.




사람들이 이곳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억새밭 곳곳이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있는 안타까운 풍경. 사진 촬영도 좋지만 뭔가 좋은 게 있다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더 낫지않을까.(혹시라도 이 포스트를 보신 분들이라면 제발 억새밭에 들어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수원화성이 내뿜는 주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묘한 매력 가운데 억새밭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




바람에 다 뜯겨간 억새들 사이로 쉬쉬 바람 소리가 묻어난다. 그 너머로 손에 잡힐듯 가까운 곳에 도시인들이 살고 있는 곳. 직선이 빼곡한 도시 한복판에 미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수원화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 




수원화성문화제를 통해 만나본 사람들은 정조대왕에 열광하고 수원화성에 열광하고 있었다. 어진 군주와 백성들이 불통의 벽을 깨고 소통에 열중하던 아름다운 한 때...그 시절은 비록 짧게 마감되었지만, 성곽 주변을 돌아보는동안 아름다운 흔적들이 성벽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어느 가을날 여행자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수원화성은 도시인의 피난처처럼 다가오는 것. 마치 조모부 품에 안긴 듯 편안한 수원화성 명소 투어는 계속된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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