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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나와 우리덜

안철수,노무현을 알면 새정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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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알면 새정치가 보인다
-이런 사람을 '빨갱이'랍니다-


 
 
이 땅에 어부지리를 노리는 회색분자들이 있었나?...
 


딱 5년간...우리를 희망으로 이끈 이 시대 최고의 지도자 아이콘이었지만, 수꼴들과 언론 등으로부터 빨갱이로 내몰린 절망적 아이콘이 '바보 대통령'이었을까. 이틀 전,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해 정치세력화 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안 의원이 읽어 내린 선언문을 살펴보니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대통령에 출마하는 듯한 출사표 같은 황당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가 정치세력화를 한다고 한 내용을 보면 아무런 알맹이가 없다. 그는 선언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현실 정치인이 된 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도 여기에 무한책임을 느끼며,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반성의 바탕 위에서, "낡은 틀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으며, 이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첫 걸음을 디디고자 합니다."

정치판에 뛰어든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뒤따라야 할 게 '정치세력화'며 당신을 지지하는 지지세력이 필요할 것이란 건 초딩도 알 정도다. 그런데 그는 낡은 틀이 무엇인지, 왜 낡은 틀인지, 왜 낡은 틀을 바꿔야 하는 지, 또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왜 필요한지, 누가 구심점이 되어 어떻게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야 할 것인지.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로드맵을 소상하게 국민들 앞에 밝혀야 했지만, 특유의 '양다리 화법'으로 두루뭉술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라고만 말하고 있다. 구심점도 명확하지 않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닌 것들. 그러나 그의 선언문을 듣고 있으면 '이사람 어부지리 노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퍼뜩 든다. 왜 그런지 한 번 더 살펴볼까.

"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가지 난제를 모두 이루어냈습니다. 나라를 절대빈곤에서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고, 피와 땀과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아시아 최초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각자 존중의 대상이지, 적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극단주의와 독단론이 아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정치공간이며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논의구조, 합리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춘 국민통합의 정치세력이 될 것입니다."

안 의원이 말한 이 부분만 보면 마치 박근혜의 시정연설 일부를 보는 듯 하다. 아니 '바뀐애찬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라 무릉도원에 살고있는 신선이자 산신령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는 유신독재자가 애창해 온 산업화를 산업화 세력으로 포장하고 있었으며, 경제대국을 이룬 게, 유신독재자들과 추종자들이 자주 써 왔던 '한강의 기적'처럼  말하고 있었다. 




또 오늘날 새누리당으로 변신한 유신망령과 민주세력을 싸잡아 '극단주의 내지 독단론'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 두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양비론을 통해 '천상천하유아독존'식 새정치가 안철수가 추구하는 새정치란 말인가. 필자는 안철수의 선언문을 티비를 통해 들으면서 다시금 실망과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정치는 소일거리일 뿐이자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였던 것.

사람들이 
꽃을 만지면 꽃향기를 풍기게 되고, 돈을 만지면 돈냄새가 풍기고, 똥을 치우다 보면 똥냄새 폴폴 풍기며, 정치인이 되면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된다는 걸 새까맣게 망각하며, 얼렁뚱땅 게티즈버그 연설을 읊조리며 선언문을 다 읽었다. 링컨이 신선이고 산신령인가. 미국식 민주주의가 한계에 부딪쳐 다수결이라는 거수기가 국회에서 날치기를 일삼는 데도 여전히 19세기 민주주의 타령을 하고 있었던 것. 그 중심이 그저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라니 주식 내다 파나?...

필자는 안철수가 교수 시절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사람이다. 그가 방송 등지에서 말한 어록들은 주옥 같았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주옥에 반해 안철수를 외쳤다. 기존의 정치판이 썩어 문들어진 것 이상으로 부패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었던 것. 안철수는 사람들로부터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마침내 대통령 후보로 18대 대선에 나섰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그런데 참 얄궂은 일이 그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자기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으로 안철수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났다. 정치란 합의와 절충의 묘가 있고 자기희생의 결단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정치가 그저 사람들로부터 괴물로 여겨진다면 누가 그런 정치를 바라볼까. 결과론적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인은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더불어 안철수의 모호한 태도가 거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단 한 번도 똑바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거나, 자기 지지세력에게 문재인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적 없다. 그저 문재인 후보가 그의 손을 몇 번 들어줬을 뿐이다. 그는 여전히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민주당과 문재인에게 돌리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고, 대통령 후보 사퇴 당시 눈물까지 보였다. 대통령 선거가 아파트 줄반장 선거도 아니고 초등학교 회장 뽑는 것도 아닌 데, 거대 정당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통째로 접수하려 했던 오만방자함이 실패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독재자의 딸이 실눈을 뜨고 손뼉을 쳤겠지. 안철수의 태도는 그 후로 어부지리를 노리는 회색분자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언제인가 두 세력이 싸우다가 지치면 손도 안대고 득을 챙기려는 심보랄까. 안철수의 새정치 선언도 어정쩡한 스탠스로 일관했던 그의 모습을 재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정치세력화를 선언한 시점이 하필이면 지난 대선 당시의 모습을 쏙 빼다박은 듯한 모습이며, 어부지리를 노리는 듯한 약삭빠른 모습이 보인다. 그게 선언문 속에 포함돼 있었다면 '속 마음을 몰라준다'고 손사레 칠까. 선언문에 포함된 얼렁뚱땅 양비론은 이랬다. 다시 한 번 더 살펴볼까.

"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각자 존중의 대상이지, 적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극단주의와 독단론이 아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정치공간이며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논의구조..."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입장이 주로 이런 식이었다. 독재자의 딸도 되고 민주세력도 무방하다는 것. 새정치란 그저 한 그릇 속에 아무렇게나 비벼넣은 비빔밥 같은 존재란 말인가. 따라서 선언문 속에는 어부지리를 노리는 장사꾼의 복선이 깊에 깔린 듯 회색분자의 노림수가 괜히 엿보이는 것이다. 

시방 대한민국에는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 규탄이 한창인 데, 그 어떤 비판적 목소리 조차 한 번 제대로 내지않은 안철수가 이른바 '새정치'를 내세워 박근혜 하야 이후의 정국을 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어쩌면 새정치 선언문 속에 포장된 '산업화 세력'은, 나라와 민족을 팔아 부정부패를 일삼은 세력들의 탈출구나 성역으로 여겨지며 지지율을 높히고 있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새정치란 정치보복과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구태정치를 모방하거나 답습할 그 어떤 명문도 주지말아야 한다. 특히 국정원을 배재하지 못한 채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선거제도에서 새정치를 말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나 다름없다. 새정치의 기준은 먼 데 있지 않고 우리 곁에 늘 있어왔는 데 그 새정치를 '빨갱이'로 황칠하고 어디서 새정치를 구걸할 수 있단 말인가. 

유신망령과 부정부패 세력들에게 '죄사함'을 내리는 새정치는 다시금 부정부패 곰팡이를 이식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 새정치를 하려면 금과옥조 보다 더 귀한 노무현 어록을 반드시 참고하시라. 대한민국 헌정사를 통해 이 보다 더 위대한 어록이 없는 데 어디서 새정치를 논한다는 말인가. 안철수 포함 새정치 참여세력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금 바보 대통령의 양심을 더듬어 보시기 바란다. 이런 사람을 빨갱이로 여기는 세상에서 새정치란 회색분자들의 공허한 정치놀음이자, 야권분열을 획책하는 얄팍한 어부지리 술책으로 보일 뿐이란 거.

  "내 눈앞에서 노동자들이 맞고 끌려가도, 
  노점상들이 단속에 걸려 쫓겨나도 
  나에게는 여전히 그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예전에는 같이 맞고 끌려가면서도 
  마음의 죄스러움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박해 현장에 동참하는 떳떳함(?)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박해받지 않는 사람,' 
  그건 정말 참기 어려운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내 마음 속의 대통령, 노무현 어록 중-

필자는 안철수 의원이 노동자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둘겨 맞고 끌려가는동안, 도움의 손길을 내민 모습을 여적 보지 못했다. 밀양의 송전탑 공사장을 만류하는 할매 할배들의 절규를 보듬는 걸 보지 못했다.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강정마을이 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히는동안 마을사람 어께 한 번 토닥거려주는 걸 보지 못했다. 
4대강이 초토화 되어가는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국가기관이 부정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분노를 표시하는 모습을 보지못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박해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정치가 이런 분들 빼고나면 어떤 대상이 남을까. 그런 심정도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않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고통받고 박해받는 사람들의 애끓는 심정을 논하며, 부정선거와 부정부패자들의 행복한 고충(?)를 동시에 논하며, 침탈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링컨의 게티즈버그의 연설 끄트머리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이 땅에서는 당당하게 노무현을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천안함의 진실을 떳떳하게 논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이 민주사회라면 통진당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니라고 목청높여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기관이 정치에 개입한 사실을 놓고 부정선거라고 자신있게 말 하지 못하고, 도둑질을 보고도 못 본채 하고 강도질을 보고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바보 대통령의 유명한 어록 하나만 더 만나보고 글을 맺는다.

 
"600년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했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거나 모른척 하며 "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각자 존중의 대상이지, 적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안철수 의원이 갑자기 두려워진다. 유신독재 세력도 존중의 대상인 당신(들)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우리 헌정사에서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을 손꼽으라면 엄지에 들 사람. 그런 바보 대통령을 알면 새정치가 보이는 법이다.

새정치는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노무현의 정치철학이 깊이 담긴 인문학을 공부하시기 바란다. 안철수에게 없거나 안 보이는 것. 다 썩어 자빠진 정치세력을 규합하는 '평균값'이 아니라, 기회가 고르게 주어지는 '평등'이 먼저이며 '반칙없는 사회'가 우선돼야 한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권력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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