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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입고 갓 쓴 '세계문화유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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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품 넘치는 역사적 소나무 길 신음
-양복입고 갓 쓴 '세계문화유산' 가는 길-




풍족하면 귀한 것을 모르는 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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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품이 절절 흐르는 노송이 서 있는 곳은,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조대왕의 얼이 깃든 수원 화성으로 가는 길목의 소나무 길.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는 길이다. 노송이 줄지어 선 길은 200여년 전 조선의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 능행차길에 조성한 소나무 숲 길이다. 수원의 북쪽 관문에 위치한 이 노송지대는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왕의 사비) 1천냥을 하사해 능행차 길목에 소나무 500그루와 수양버들 40그루를 심은 것이 군락을 이루게 됐다고 전하는 역사적인 소나무 길이다.

1973년 7월, 137그루가 경기도지방기념물 19호로 지정됐으나, 현재 남아있는 소나무는 불과 37그루 정도라고 한다.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과 늘어난 차량통행으로 인한 매연으로 소나무숲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며, 그와 동시에 역사적인 숲이 자취를 감추어 있었던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동안 수원시는 소나무 길 주변에 어린 후계목 500여그루를 심었지만,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품종과 수령, 서식환경이 비슷한 노송을 선별해 옮겨 심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전략 조차 실패할 공산이 커 보인다. 그동안 해 왔던 일이 사후약방문식 처방이었기 때문이자, 고사 소나무의 원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이유 때문이다. 정조대왕 당시 또는 근.현대를 지나는 동안, 이 길은 주로 우마차가 통행했거나 차량의 통행이 뜸했으며, 6.25동란을 겪는 동안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했을 터. 
  





필자 등 10여 명의 일행이 '전국 파워 소셜러 초청 수원 팸투어'에 나선 직후, 정조대왕이 조성한 노송지대를 살펴보는 즉시, 이구동성으로 말한 한마디는 '너무 아름답다'는 말과 함께 '관리소홀'에 대한 탄식이 절로 나왔다. 200년도 더 되어 보이는 귀품있는 소나무가 내뿜는 매력을 단박에 상쇄시키는 건 주변의 풍광이었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듯한 소나무 길 옆의 산만하고 너저분한 풍경과 함께 신호가 바뀌자마자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들. 이런 환경에서 노송이 살아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 




무엇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으로 가는 길목이자 정조대왕의 능행차길은, 정조대왕이 소나무 길을 조성할 당시와 너무도 다른 을씨년스러운 모습. 노송지대에 심어진 소나무 다수는 껍질이 붉은 적송(赤松)이었다. 이 소나무는 내륙에서 많이 자라 육송(陸松)이라고도 불렀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민족이 주로 살아왔던 한반도는 소나무가 주를 이루었다. 




우리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걸고 솔가지를 걸었으며, 죽을 때 주검을 안치하는 관은 소나무로 짰다. 또 소나무는 집을 짓는 데 재료로 쓰였으며 궁궐이나 사찰을 지을 때도 소나무를 사용해 왔다.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소나무의 '송(松)'자는 뭇 나무들 중에서 으뜸(公)으로 친 나무였다. 그래서인지 옛날 왕실의 무덤이나 평민들의 무덤 주변에는 솔 숲이 망자의 혼을 달래고 있었다. 사후까지 함께하는 귀한 나무였다.




우리선조님들로부터 우리에게까지 너무 친숙한 소나무는 근래에는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라는 성분이 해충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나무들은 자신의 생존에 방해되는 주위의 병원균 해충 곰팡이를 박멸하기 위해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유해한 독성물질을 내뿜지만, 이 물질은 사람과 동물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성분으로 알려졌다. 

정조대왕은 즉위 직후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현륭원에 모시면서,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파장동,정자동 송죽동에 걸쳐있는 노송지대의 지지대 고개로부터 서울-수원간 국도변(京水路) 5km에 이르는 구간에 소나무길을 조성했다. 이유가 뭘까. 




노송지대는 정조임금의 지극한 효심이 엿보이는 곳이다. 당신이 생전에 부친께 다하지 못한(할 수 없었던) 효도를 능을 옮긴 후 능행차 동안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 정조대왕이 때때로 현륭원으로 능행차를 떠날 때, 맨 먼저 수원으로 발을 디딘 곳에 나쁜기운이 침범하지 못하게 조치한 것. 그와 함께 정조대왕이 친히 이 길을 행차할 때 마음을 정화시키는 길이었을 것으로, 당신의 성품으로 짐작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정조대왕이 아버지를 모신 성소로 가는 길이자, 후세인들이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는 길에 조성된 소나무 길인 것. 그런 역사적인 소나무길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고사직전에 있다면, 그게 문화민족으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 아닌가. 필자와 일행이 그 역사적인 길에 들어서는 순간 그저 부끄러운 마음이 든 이유. 마치 양복을 근사하게 잘 빼 입고 갓을 쓴 능행차 길 같은 산만하고 어수선한. 


귀품 넘치는 역사적 소나무 길





그러나 아직은 귀품이 절절 흐르는 소나무들이었다. 더 늦기 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는 길이 흙길로 다듬어져, 우리 문화유산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는 길이 숨통을 텃으면 싶고, 더 늦기 전에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들의 출입이 제한되거나 우회했으면 싶다. 
풍족하면 귀한 것을 모르는 법일까. 

해외로 눈을 돌려보시라. 어떤 선진국에서는 역사가 일천하지만 자기 선조님들의 문화유산을 목숨처럼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국토 대부분이 귀한 문화유산 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하찮게 여기는 듯. 관계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이 문화시민과 역사를 되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 포스트에 등장하는 노송들은 주변의 방해물을 최소화한 사진들이다. 참고하시면서 마지막 한 장까지 봐 주시기 바라며, 팸투어 시간 관계상 노송지대 입구만 둘러본 정조대왕의 얼이 깃든 소나무 길이다.

수원 화성 
관련포스트 고인돌과 석공들의 얼이 깃든 화성 / 줄서야 가 보는 오래된 솔향기 길 / 못 보면 두고두고 후회 할 최고의 검술 / 양복입고 갓 쓴 '세계문화유산' 가는 길





























소나무길 옆으로 길게 쳐 둔 방책 만으로 소나무를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소나무 길에서 눈에 띈 옹이.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아픔을 견뎠으면...옹이를 주렁주렁 달고 살았다.













노송지대에 길게 늘어선 소나무에는 각각 지정번호가 쓰여져 있었다. 40년 전에 있었던 형식적인 일이었으며, 노송이 37그루 밖에 남지않게 된 최악의 조치였다. 그 땐 너무 가난해서 돌아볼 수 없었던 문화유산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국민 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선 선진국민들이 선조님들의 문화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모여사는 나라. 부모를 공경하는 효심이 지극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무심코 방치되어선 곤란한 게 아닌가. 200여년 전 정조대왕이 그토록 꿈꾸던 사람사는 세상의 시작은 소나무 길이다. 그 길이 우리더러 '아프다'고 말한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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