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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봄을 통째로 내준 '즘골'의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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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골에서 만난 '중택이' 매운탕 화들짝
-봄을 통째로 내준 즘골의 봄나들이-




통발 속에서 비릿내가 물씬...


즘골은 봄을 통째로 모두 다 내주었다. 고달사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날. 우리는 음모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무서운 음모였다. 고달사지로 가는 길에 봤던 논에는 미꾸라지가 살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해 미꾸라지를 잡자는 음모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봄볕이 따사로웠지만 아직 논바닥은 찰 터. 누구인가 발을 걷어부치고 논바닥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논둑길을 걸으면서 바라본 논 속에는 미꾸라지가 살 것 같은 판단은 들었지만 미꾸라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귀갓길에 만난 아우님의 친구 두 사람이 미꾸라지가 얼마나 귀한 건지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머해?...미꾸라지 잡나?..."

정말 미꾸라지를 잡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들고 다니는 작은 그릇에 미꾸라지 몇 마리가 봄볕에 뺀질대고 있었을 뿐, 단백질을 보충하기엔 한참 부족한 양이었다. 뭔가 다른 음모가 필요했다. 우리는 귀가길에 각자 할 일을 정하고 한 사람은 봄나물을 케고 두 사람은 천렵에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간밤에 과음한 탓인지 공기가 너무 신선했던 탓인지, 일찍 일어난 즘골의 아침은 너무 선명하고 신선했다. 공방의 문을 열고 나서자 마자 작은 입자로 변한 봄의 조각들이 세포속으로 깊숙히 파고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타는 목마름. 아직 아우 내외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형도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 창호지 밖에서 한참이나 흐느낀 봄비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뒷뜰 너머 언덕 위 산수유 꽃망울에 눈물자국만 그렁그렁.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었다. 언덕을 돌아 내려오자 저 만치서 정덕수 아우님이 어른 거렸다.

"선배님, 여기 냉이와 달래가 지천에 깔렸는데요."




아우님이 눈이 마주치자 한 일성. 즘골의 아침은 그렇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즘골 곳곳에는 누가 일부러 심어놓은 듯한 냉이들이 봄비에 젖어 잔디처럼 무성했다. 또 비록 자갈이 많이 섞인 자잘밭이긴 했지만 그곳에는 냉이가 지천에 널려있었다. 우리는 즘골의 한 산골짜기에 들러 옥수같은 물 앞에서 큰 절 하듯 엎드려 개울 물을 마셨다. 

머리를 드니 산수유가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해갈 시켜준 물맛은 냉장고와 냉동실 사이에 고였던 물 같이 차고 나무수액 처럼 달짝지근한. 정말 시원했다. 타는 목마름을 해갈한 직후 눈에 띈 건 버들강아지. 봄은 즘골 구석구석까지 와 있었다. 또 그곳에는 폐광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즘골은 번창했었단다. 금을 케낸 이 작은 산골에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 던 곳. 산골 곳곳에는 폐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착취로 뚫어놓은 어두컴컴한 이 구멍은 훗날 이 마을 사람들이 한여름에 피서지로 사용했다니 역사가 아이러니 하다. 금을 케 간 자리가 피서지로 사용된 것. 음모는 그런 것일까.우리나라 곳곳이 안 그런 곳도 없지만, 즘골에 서린 뒷담화에도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이 동굴 속의 어둠처럼 슬며시 깃든 곳이기도 했다. 




안개가 자욱한 골짜기가 우리가 엎드려 개울 물을 마신 곳. 아침을 먹고 고달사지 답사를 다녀온 직후 음모는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지고 있었다. 점심은 외식. 양평에서 더 가까운 양동역 앞 유명한 만두집. 1인 분이 너무 많아 절반 밖에 먹지 못하고 돌아온 그날. 즘골 개울에 된장과 떡밥을 풀어 담궈둔 통발(어항)은 어떻게 돼 가는 것일까.
 



외식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시인 정덕수 아우님은 아침에 봐 두었던 달래와 냉이 삼매경에 푹 빠졌다. 엄동설한을 즘골에서 보내고 봄기운 가득 머금은 달래와 냉이의 임자는 따로 있었다. 잠시 켔는데 즘골의 달래.냉이를 다 켄 듯. 장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 걸 일일이 다 다듬으며 푸념 섞인 한마디.


"참 나...담에는 쫄따구 한 사람 데려와야지 나이 50에 이 짓을 해야 하나. 하하 "




굳이 서열을 매긴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각자의 분담을 알아서 척척 해 내고 있었던 것. 그렇다고 그 다음 서열에 있던 도예가 김원주 아우님과 필자도 그냥 퍼질러 자빠지진 않았다. 아우님이 달래와 냉이를 케는 동안 즘골의 개울에 어항을 투척해 놓은 것. 그건 아무나 하나. 아침에 미리 봐 두었던 황금어장이 없었다면 달래와 냉이도 빛을 잃었을 것. 조심스럽게 들어올린 어항 속은 중택이들 퍼덕이고 있었다. 

"우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의외의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 통발 어항 속에는 '중택이'들이 퍼득거리는 수 만큼 비릿한 냄새가 코 끝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중택이가 누군지 한 번 살펴보고 가자. 마치 사람 이름 같기도 한 중택이.

그는 
버들치(chinese minnow)로 불리는 민물고기이자 1급수에만 서식하는 물고기. 잉어목 잉어과의 민물고기로 한국(서.남해로 흐르는 하천의 중.상류), 중국(연해주, 흑룡강, 요하 수계 등), 일본의 중·남부에 분포하며 수서곤충 및 갑각류를 섭식하는 잡식성으로 산란기는 5~6월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전역(산간)에 분포하는 민물고기. 중택이는 버들치(게)의 방언이었다.
 




그런데 버들치의 방언은 중택이 외에 더 있다. 더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전국의 골짜기 마다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달랐던 것인지. 버들치의 방언을 나열해 보니 노르스름 하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뱃속에 알을 가득채운 것 정도로 많았다. 이랬다.




 버들치의 방언

동투라지,둥태,둥태기,똥치,똥피리,메옹이,모앵이,민피리,버드랑치,버드장이,버드쟁이,버드쟁치,버드제이,버드치,버들가지,버드랑치,버들막지,버들매기,버들먹지,머들매치,버들뭉치,버들묵지,버들미기,버들이,버들붕어,버들양치,버들장이,버들탱이,버들피라미,버들피리,보리중태기,붕태기,뻐들미기,뻐들상어,뻐들이,왕건,종태기,죽태기,준고기,준태,준태기,중다리,중때기,중보,중어,중어리,중치,중타라미,중타라지,중타리,중태,중태기,중태미,중태지,중택어,중택이,중터구,중터지,중트라지,중트래미,중티기,중푸리,퉁두라지,버들납치,버들치리,뻐들묵지,밀피리,버드라지,버들쟁이,버들무기,버들무지,버들무치,버들쟁이,뻐드남치,뻐들마치,중턱이,중태미,중걸대,중고기,중타지,중탁이,중탈아치.




버들치의 방언 만큼 수 많은  즘골의 봄향기가 냄비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화들짝!!...ㅜㅜ) 맑은 물 1급수에 살고 있었던 버들치의 이름을 다 안다는 건 무리. 중택이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이름만 달랐을 뿐 모양새는 다르지 않았다. 그 중택이가 몸을 던져 매운탕 속으로 투신을 하자 중생들이 놀라는 건 당연지사. 즘골의 봄이 통째로 봄햇살 가득한 냄비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도예가 김원주 아우님은 조금 전 중택이를 손질하면서 주문 외듯 한마디 한 적있다.

"미안하다꾸나. 중택아. 형들이 단백질이 부족하단다."

또 정덕수 아우님은 어떻고. 

"참 나...담에는 쫄따구 한 사람 데려와야지 나이 50에 이 짓을 해야 하나. 하하 "

이렇게 말하며 그 많던 냉이와 달래를 혼자 다 다듬었다. (흠...누가 달래 다듬어 달래?...^^ )
 


냉이와 달래 다듬기 삼매경에 빠진 '한계령' 원작시자 정덕수 선생



참 많이도 케셨다.




한 올 한 올 일일이 손길이 가야했다.




물에 담궈 흙을 털어내자 하니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떡잎 등을 다 다듬은 연후에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한다고 했다.




즘골에서 봄기운을 머금고 통통하게 자란 달래...




엄동설한에 즘골 자갈밭 깊숙히 뿌리내렸던 냉이...




이날 맏형 문화재답사 전문가 하주성 형은 어영부영 즘골을 뒤져 수원에 사는 아우님께 준다고 영지버섯을 케셨다. 참 자상하신 형.




즘골을 그런 곳이었다. 아무 때나 마음만 먹으면 값 없이 다 내어주는 곳...

그런 곳을 어찌 잊는단 말이오. 봄을 통째로 다 내 준 즘골인데 말이오. 하나 궁금할 게 있을 법 하오. 중택이 매운탕 맛이 어떠했느냐는 등 궁금증 말이오. 그림만 보면 모르오?...그런 거 묻지 마시오. 난 모르오. 누구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날 중택이 매운탕은 겨우 시작에 불과 했소.
부족한 막걸리 때문에 사다리타기 놀이를 한 것까지 기억하오. 그 다음 촛농이 공방을 흥건히 적시는 밤 늦도록 즘골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건 기억할 수 없소. 2박3일에 걸친 음모의 끝은 늘 그런 모양이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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