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에서 바라 본 천안함 침몰해역, 멀리 대청도와 수청도가 겹쳐 보이고 우측으로 연봉바위가 보인다.
자유를 찾아 날아간 나비들은
어떤 모습일까. Tweet
뒤돌아 보니 참으로 까마득한 세월 저편의 기억 속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영화의 명장면 하나가 있다. 수십미터는 족히 될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한 죄수가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다. 그는 빠삐용(Papillon,나비)으로 불리우는 죄수로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붙인 검사에 대한 복수' 때문에 탈출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 마침내 자유를 찾는 장면이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다. 그는 10 번의 탈출 실패로 죽을 고비 까지 넘겼지만 끝내 자유를 찾아 탈출에 성공한다. 1973년에 제작된 영화 빠삐용은 앙리 샤리에르의 실화(자전적 소설)를 바탕으로 그려졌는 데, 주인공은 스티브 맥퀸 (빠삐용/ 앙리 샤리에르 역)과 더스틴 호프먼 (루이 데가 역)만이며 감독은 '프랭클린 J. 샤프너'가 맡았다.
영화를 본 지 40년도 훨씬 더 지났지만, 이 영화를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건 영화 마지막의 극적인 장면이 가져다 준 짜릿한 희열 때문이었다. 또 그 장면은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간 한 마리 나비와 같은 장면이었는 데, 유독 '장자의 호접지몽'에 나타난 나비와 비교되며 자유와 구속 내지 해탈이라는 명제로 청년기를 환상속에 가두어두기도 했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나비'가 등장하는 것도 참 괜찮은 설정 같기도 해서 몇자 끄적이는 데 영화 빠삐용 속에 등장하는 꿈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 커서 천안함 침몰사건 생존자들의 모습을 비교해 봤다. 우선 영화속으로 들어가 볼까. 주인공 빠삐용은 어느날 감옥안에서 꿈을 꾸게 된다. 빠삐용에게 '포주살인죄'를 뒤집어 씌운 검사와 나눈 대화다.
영화 '빠삐용 스틸 컷 중에서
"네 죄가 무엇인지 너는 알고 있다." "난 죄가 없소. 난 포주를 죽이지도 않았고, 아무 증거도 발견하지 못한 당신들이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오." "그건 어느정도 사실이지. 그러나 너의 진짜 죄는 포주를 죽인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내 죄가 무엇이오." "너의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없는 최악의 죄다. 인생을 허비한 죄!!" "흠...그렇군...유죄!..."
참 희한한 죄도 다 있다. 어쩌면 그 누구도 이런 죄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누명을 쓰게 된 당사자의 고통이 얼마나 컷으면 이런 대사가 가능하며, 죽음을 무릅쓴 탈출을 위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겠나. 빠삐용의 머리속에는 자나 깨나 그를 가두어 둔 감옥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찾는 일이었다.
영화의 실제 인물 앙리 샤리에르는 1906년 남부 프랑스에서 작은 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해군에서 2년 간 복무한 이후 파리에서 잠시 건달생활을 하기도 했는 데 그는 이때 '포주살인죄' 누명을 쓰게 된다. 10년 여의 수감생활 동안 무려 10번의 탈출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그에게 돌아온 마지막 감옥은, 죽어서만 나올 수 있다는 천형의 유배지 '악마의 섬'이었다. 빠삐용은 그 악마의 섬에서 마지막 탈출을 시도하며 벼랑 끝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을 끝으로 자유를 되찾았던 것이다. 그를 괴롭히고 있던 유죄의 사슬을 끊고 나비처럼 날아 바다로 뛰어든 것이다. 잠시 장면을 바꾸어 볼까.
백령도에서 바라 본 천안함 침몰해역, 멀리 연봉바위가 보인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00분, 백령도 앞 바다에서 작전 중이던 우리 해군 호위함 천안함이 좌초 이후 잠수함과 충돌하여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천안함 침몰사건은 이명박정부의 친정부 합조단에 의해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조작질 되고 있었다. 조작질 때문에 나라가 발칵 뒤집어 졌다. 조작질은 수 많은 의혹을 남기게 되었고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은 천안함 침몰사건의 최초 사실 등을 근거로 좌초설과 충돌설을 주장하게 됐다. 그게 조작질 된 천안함 피격사건에 맞선 <천안함의 진실> 찾기였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고소 당하는 게 대한민국일까. 천안함 침몰사건 재판은 마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고뇌하는, 빠삐용의 운명을 닮아(?) 무죄 입증을 통해 자유를 찾아나서는 영화 처럼 흥미롭다. 그 과정에서 천안함의 진실이 밝혀질 것은 확실하다. 그 중에서 잠시 살펴볼 곳은 '천안함의 생존자'들의 모습이다.
2010년 4월 7일(수), 천안함 함장 최원일을 비롯한 생존자들은 빠삐용 등이 갇혀있던 감옥의 죄수들 복장과 비슷한 옷차림으로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었다. 멀쩡한 승조원들에게도 환자복을 입혀 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친정부 합조단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케 하는 복장인 것이다. 어떤 승조원들은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면서 목 뒤를 만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승조원들의 공개 진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충돌음 대신 "폭발음이 났으며 순식간에 배가 90도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화약냄새는 나지 않았으며 사전 배에 이상징후는 없었다"고 밝혔다. 좌초가 없었다는 말이며 폭발도 없었다는 말일까. 생존자들의 진술은 주로 이랬다.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천안함 승조원 생존자들 모습
"천안함의 병기병장인 오성탁 상사는 "사고 순간 지하 2층의 격실에서 업무보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떠오르고 정전이 됐다"고 말하고 "귀가 아플 정도의 폭발음이 났으며 '펑'하는 순간에 배가 90도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오 상사는 또 "병기장으로 탄약을 담당하는 책임자인데, 만약 화약이 있었으면 불이 나고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라며 사고 순간 화약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배의 내부적인 문제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 대해 이채권 대위는 "출항 전 2~3일 전부터 작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선체의 노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사고 이전 물이 새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전 비상상황이었느냐는 질문에 기관장인 이채권 대위는 "긴급 상황이었다면 고속 추진을 위해 기관장실에 있어야 한다. 어떤 조짐이 있으면 고속 추진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준영 병장도 "특별한 상황이 있었으면 근무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상황이 없어 침실에서 쉬고 있었다"며 비상상황은 없었다고 말했다.
음파탐지를 맡은 홍승현 하사는 "당시 상황에서는 음탐기에 특별한 신호가 없었고 당직자는 정상근무했다"고 덧붙혔다. 이와 관련, 최원일 함장은 "사고 원인은 오후 10시 32분 통화할 때 원인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외부충격이라고 느꼈다"고 말하고 "당시 고속정, 구급함 등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작전관 박연수 대위는 "제가 마지막으로 눈으로 확인한 시간은 함교에 당직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상에 오후 9시24분이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사고시각은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 이라고 재확인하면서 사고 당시 천안함은 계획대로 정상적인 활동중이었다고 밝혔다. 생존자들과 관련해 윤한두 국군수도병원장은 브리핑에서 "일부 환자는 불안과 불면증, 죄책감, 악몽 등의 심리적 압박감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전개될 사고원인 분석과 선체 인양 결과에 따라 다양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출처 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9390>
영화 빠삐용 엔딩 장면
생존자들의 진술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참 재밌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천안함의 병기병장인 오성탁 상사는 폭발음이 펑하고 들렸는 데 화약냄새는 나지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1번 어뢰가 폭발했다는 데 화약냄새가 안나나? 또 기관장 이채권 대위는 비상상황이 없었다고 말하는 데 해경에 접수된 내용은 왜 좌초며 대통령에게 보고된 사실도 왜 침수인가? 3월 26일 오후 9시 00분에 침몰한 천안함이 약 열흘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사고내용이 서서히 세탁되고 있었던 것일까. 몇몇의 승조원이 횡설수설하고 있는 가운데 음탐기를 담당자가 결정적인 증언 한방을 날린다. (북한의 잠수정이 코 앞 까지 진출할 동안)음탐기에 특별한 신호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정말 음탕한 진술 아닌가. 북한제 잠수함들은 소리 소문도 안 나는 스텔스 기능을 갖추었나? 이런 불상사에 대해 최원일 함장이 확실하게 한 방 날렸다. 외부충격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외부폭발이 아니라는 진술이다. 아무렴 전문 군사훈련을 받은 함장이 충격 모르고 폭발 모르겠나.
백령도에서 바라 본 천안함 침몰해역
아무튼 그 이후 이들 생존자 58명을 본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참 희한한 일이 금년 봄 천안함 침몰사건 1주기 쯤에 벌어지고 있었다. 연합뉴스가 창원 발 천안함 생존자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전역한 상태였는 데 "전우를 구하지 못한 아픔을 조금이나마 잊으려 고된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보냅니다" 라고 말했다. 그 주인공은 천안함 생존 장병인 최성진(22)씨였는 데 지금도 악몽을 꾼다는 말이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최 씨는 "축산물을 다듬고 나르고 판매하는 일이 고되지만 일을 할 때는 천안함 생각이 나지 않고 시간도 잘 간다"며 일부러 고된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그가 악몽을 꾸는 이유는 '전우를 구하지 못한 아픔'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유가 타당하지 못한 것 같이 느껴진다. 최 씨의 전우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천안함 생존자들이 모두 최 씨와 같은 전우애를 가졌다고 한다면, 생존자 전부는 악몽에 시달리며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이 포스트를 끄적이게 된 배경이 최 씨와 같은 생존자들이 겪을 고통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 씨를 인터뷰한 기사 속에서 최 씨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내용이 발견됐다. 인터뷰 기사는 이랬다.
"...천안함 폭침 당시에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는데 막상 전역을 한 뒤에는 천안함 사건이 자꾸 떠오르면서 먹은 음식을 계속 토해냈다. 이 때문에 전역 한달여만에 몸무게가 7㎏이나 쏙 빠졌다. 병원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성 위장장애라는 진단을 내려 한달 이상 약물 신세를 져야 했다. 최씨는 "전역 이후 잠을 자면 천안함 사고 당시로 돌아가 다시 폭침당하는 꿈을 꿨다"며 "죽은 전우들에게 미안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한다 치더라도 연평도 포격 도발은 북한이 저지른 것이 확실하지 않느냐"며 "그런데도 북한을 감싸고 도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3/18/0200000000AKR20110318201300052.HTML?did=1179m>
백령도에서 바라 본 천안함 침몰해역, 연봉바위 옆으로 누런 띠가 형성되어 있다. 수심이 얕은 지역이다.
최 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그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최 씨는 천안함 침몰사고의 원인에 대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한다 치더라도..."라며 이명박 정권의 친정부 합조단이 내 놓은 <천안함 피격사건>의 실체에 대해 부정하고 있는 어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연평도 도발과 분명히 다른 게 천안함 침몰사고라는 말 아닌가. 글을 맺어야 겠다. 다시 영화속으로 들어가 볼까. 주인공 빠삐용은 어느날 감옥안에서 꿈을 꾸게 된다. 빠삐용에게 '포주살인죄'를 뒤집어 씌운 검사와 나눈 대화라고 말했다.
"네 죄가 무엇인지 너는 알고 있다." "난 죄가 없소. 난 포주를 죽이지도 않았고, 아무 증거도 발견하지 못한 당신들이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오." "그건 어느정도 사실이지. 그러나 너의 진짜 죄는 포주를 죽인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내 죄가 무엇이오." "너의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없는 최악의 죄다. 인생을 허비한 죄!!" "흠...그렇군...유죄!..."
백령도에서 바라 본 천안함 침몰해역
천안함 생존자들 대부분은 최 씨 처럼 악몽을 꾸게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 기억 속에는 천안함이 폭침되었다는 조작질 이상의 침묵이 운둔자 처럼 그들 뇌리 속에 자리 잡고 그들을 매시간 매일 저녁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죄목을 모른 채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가 탈출할 수 있었던 동기부여가 인생을 허비한 죄 때문이었다. 감옥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으면 언제인가 죽음을 맞이할 뿐이며 그의 결백한 주장은 죽음 속에 묻히고 말 것이다. 그는 그의 결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비처럼 절벽 위에서 몸을 날려 자유를 찾았다.
군인이 전쟁터 내지 작전 중에 목숨을 잃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다. 천안함 침몰사고는 한미간 규칙적인 훈련과정에서 전혀 뜻 밖의 사고로 승조원들이 숨진 사건이었다. 또 사고 정황상 생존자들의 의지로 46명의 승조원을 구출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생존자들이 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질만한 이유가 별로 없어보이는 것이다. 다만, 천안함 생존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을 죄목이라면 '양심'이다. 생존자들이 진술을 통해 못다한 말들이나 반드시 해야할 증언을 하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는 모습이, 최 씨와 같은 정신적 외상이나 악몽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세상에는 무덤 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 못하고 가슴에 묻어둔 '공공연한 비밀'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속 빠삐용과 루이 데가의 명대사가 도움이 될까.
백령도 연화리에 위치한 전망대, 우측으로 연봉바위가 보인다.
"내 이름을 대지 그랬어. 그러면 배가 덜 고팟을 텐데"
"흠...거의 그럴뻔 했지."
"누군가 그러더군. 유혹을 참아내는 정도가 그 사람의 인격의 척도라고 말야."
영화 빠삐용의 실제 인물 앙리 샤리에르는 프랑스령 가이나아의 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한 뒤 베네수엘라에서 자유인으로 살게된다. 그곳에서 그는 직업노름꾼,광산노동자,은행털이,요리사,호텔지배인, 전당포털이 등을 전전하며 아들 딸 낳고 바닥인생을 살다가, 1967년 범죄시효가 만료되자 1969년에는 책 출간 관계로 파리를 마지막 방문했다. 그는 8일 간의 짧은 파리방문 기간 중에 몽마르뜨의 벤치에서 "너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을 받는 네 미래의 주인으로 여기에 있다"라고 속삭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영화 <빠삐용> 개봉영화를 본 이후 1973년 7월 29일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천안함 생존자들 중에 위 '유혹'의 명대사를 흉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혹시라도 정부가 침묵을 강요한 사실이 있다면 그 사실 마저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게 더 낫지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은연 중에 튀어나오는 말 조차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한다 치더라도..."라며 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데, 숨진 동료들이 정말 원하고 있을 천안함의 진실을 가슴 속에 감추어 두면 그야말로 '인생을 허비한 죄'와 같은 악몽을 꾸게되지 않을까. 천안함 생존자들이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말고 장자와 빠삐용의 나비와 같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기를 바란다. 요즘 말로 고딩 1학년 때 본 영화의 끝장면이 이토록 오래 남아 감동을 주는 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되겠나. 오는 22일 속개될 본격적인 천안함 침몰사건 재판에서 <천안함 장병 진술서 일체>가 증거로 채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