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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山들

히말라야는 '고미영'을 놔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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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는 '고미영'을 놔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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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이리와봐!!..."

건너방에서 안사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급한 일이 있을리가 없는데 빨리 와 보라는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안사람은 뉴스가 전하고 있는 히말라야 등정 소식을 내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어서 들리는 소리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고미영이가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했데!!..."

"...그래?!..."

그녀의 히말라야 등정 소식을 접하자 마자 마치 우리가 히말라야에 오른 것 처럼 기뻐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우리는 한목소리로 화답했다.

"...와!~ 대단하다. 정말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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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틀후 나는 다시금 안사람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안타까워 했다. 안사람은 너무 놀란 표정으로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여보!...고미영이가 실종됐데!!...ㅜ"

나는 그녀의 실종 소식을 듣자마자 불길한 느낌이 드는 한편 그녀가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히말라야가 그녀를 너무 사랑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 11일 히말라야의11번째 고봉인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고미영은 올해에만 '마칼루와칸첸중가' '다울라기리' 등정에 이어 '낭가파르밧'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고, 낭가파르밧에서 고미영 대장은 위성전화로 "전설적 산악인 헤르만불이 처음 오른 곳에 올라 너무 감격스럽다"고 말하는 한편, "남은 3개 봉도 안전하게 등정해 한국 여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치겠다"고 각오를 다졌지만, 낭가파르밧이 그녀에게 마지막 등정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신神 이외 그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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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낭보에 이어 비보를 듣자 마자 문득 떠오른 산에 대한 아픈 추억들은, 그녀가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길에서 마지막 켐프에 이르는 동안 벌인 사투와 함께 최근 다녀온 지리산의 힘들었던 산행이 떠 올랐던 것이다. 등산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늘 다니던 산도 힘이 든다는 사실이며 조금만 더 높은산을 등정할 때는 체력이 곱절이상 소요됨은 물론 단단한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결코 산행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고 설령 등정에 성공했다고 해도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의 하산길은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은 산악인들이면 누구나 알고있는 현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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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 사이에서 산을 등정한 결과에 대해 예전처럼 '정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정상에 올랐다'라는 표현이 그나마 겸손한 표현이지만, 좀 더 따지자면 정복이나 정상에 올랐다는 표현보다 더 겸손한 표현은 '품에 안겼다'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국내외 산악인들은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과 같이 험준한 산이 아니더라도 비숫한 조건의 등정에 나설때면 으례히 특정 산이 등정을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가 하면 특정 산을 관장하는 신께 기도를 올리며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등정길에 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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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낭가파르밧'의 품에 안긴 故고미영 대장 자료사진

물론 고미영 대장도 이와 같은 절차를 거쳤기에 2006년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봉 14좌에 여성으로는 첫 등정에 나섰던 것이며 11번째 고봉인 낭가파르밧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히말라야를 사랑한 그녀의 당찬 포부와 달리 '히말라야의 신'은 그녀를 너무 사랑했던 것일까? 물한모금도 제대로 삼킬 수 없고 발자국을 떼기 조차 힘든 정상에서 베이스 켐프로 이동하는 동안 베이스 켐프를 눈앞 100m를 남겨두고 그만 실족하는 사고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 사고에 대해 혹자들은 그녀의 죽음을 놓고 무리한 등정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지만 그건 당치도 않는 소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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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은 지난 봄 지리산 등반중에 담아 본 안사람 모습과 지리산의 고목들
 
히말라야 정상 등정과 같은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하고 싶다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고미영의 경우 3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산악등반의 길을 택했지만, 타고난 체력과 투철한 의지로 정상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며, 그녀는 2005년 히말라야 '드리피카(6,447m)'를 오를 때는 로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60m 아래로 추락하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부상당한 채로 끝내 정상을 밟았던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런 대가를 원하지도 않고 언제 어느때나 늘 자신을 품어주는 산을 그리워 하며 산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히말라야  낭가파르밧의 신은 오히려 고미영을 더 사랑하여 하산을 허락하지 않은 채 히말라야에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했다. 산을 사랑한 고미영 대장이여!...당신이 그토록 사랑한 산에서 영원히 함께 사시길 기원하며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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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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