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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설악의 거울 '영랑호' 아시죠? 설악의 거울 '영랑호' ...아시죠? 영랑호永郞湖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금호동·영랑동 일대에 걸쳐 있는 넓이 약 1.21㎢, 둘레 8km 정도의 석호며, 신라시대의 화랑이었던 영랑·술랑·남랑·안상 등이 금성(지금의 경주)으로 무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이 호수에 들르게 되었는데, 영랑이 호반의 풍취에 도취되어 무술대회조차 잊어버렸다는 전설과 함께 '영랑호'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영랑이 이 석호 곁에서 본 영랑호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에 영랑신선무리가 놀며 구경하던 암석이 기묘한 곳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이중환의에서도 구슬을 감추어둔 것 같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라 표현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암석이 기묘한 .. 더보기
망부석이 된 물고기? 망부석이 된 물고기? 우리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중에 '망부석 설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신라사람 박제상의 아내 이야기가 담긴 이 설화를 시작으로 곳곳에 망부석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오는데 망부석 설화중 일부를 위키백과에 쓰여진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두물머리 세미원에 있는 망부석이 된 물고기?... 망부석望夫石 설화는, 일본으로 떠난 박제상을 그리워한 박제상의 부인에 얽힌 설화이다. 삼국유사의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편의 중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王旣見寶海, 益思美海一欣一悲, 垂淚而謂左右曰. 如一身有一臂, 一面一眼, 雖得一而亡一, 何敢不痛乎. 時 堤上聞此言, 再拜辭朝而騎馬. 不入家而行, 直至於栗浦之濱, 其妻聞之, 走馬追至栗浦, 見其夫已在舡上矣. 妻呼之切懇, 堤上但搖手而不駐. 왕이 .. 더보기
흔적 뿐 사라질 운명의 '대모산 석축산성' 안타까워! 흔적 뿐 사라질 운명의 '대모산 석축산성' 안타까워! 서울 강남에 있는 대모산을 방문 해 보신분들은 한번쯤은 의아해 할 수 있을 겁니다. 유독 대모산 정상에 많이 흩어져 있는 돌 때문입니다. 여러날을 방문 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 돌들의 정체를 알면서 부터 였습니다. 이 돌들은 신라시대에 축성된 석축산성의 잔해라는 것입니다. 대모산을 등산하시는 분들은 우리 선조님들이 애써 쌓은 이 석축산성을 함부로 밟고 다닌다는 이야깁니다. 반공호 구축에 석축산성의 돌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대모산 정상의 헬기장이나 통신시설도 이와 같다. 문화유산을 재활용(?)하는 나라라니!...ㅜ 서울 강남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개발'을 떠 올릴 것이며 개발이익을 떠 올릴것인데 이 석축산성도 개발에 떠밀린것이 .. 더보기
산꼭대기서 '샘' 솟아나는 이성산성의 불가사의? 산꼭대기서 '샘' 솟아나는 이성산성의 불가사의? 아마도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놀랄 일' 하나가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은 산아래서 보면 산이라기 보다 구릉에 가까울 만큼 산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성이라하여 산성의 흔적을 찾아 보려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이 '작은궁궐'이 아닌가 했지만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궁궐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성이 혹시라도 있을 적의 침략에 대비해서 쌓은 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허술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의 쓰임새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래서 제가 유추한 것은 다름아닌 '학원-서당 또는 서원-'이 아니었나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이데 서기 608년 당시의 학원이라고 하기엔 좀 생뚱맞..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