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행복한 여행지
카메라 혹은 사진을 좋아하세요..?!!
암봉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세월이 얼마만큼 되는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관련 연재 글에 돌로미티 산군이 형성된 시기는 대략 7천만 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 인간이 계수할 수 없는 까마득히 먼 시간부터 지금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 암봉 아래서 감동에 빠져들거나 작아지는 것도 그 때문 아닌가..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달리 변함없이 우뚝 솟아있는 당당함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보듬고 있는 것이다. 비교우위에 빠져들며 불행과 절망을 말하기 전에 당신의 현주소를 돌아보면 조물주의 놀라운 계획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드넓은 가슴을 지닌 것이다. 가슴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그곳에서 천국이 발견된다.
사람이 보이시나요..?!
지난 여정 그곳에 가면 작아지는 사람들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지구촌 촌놈 1인이 어느 날 돌로미티 여행 정보를 접하고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떠난 여행은 인생을 뒤흔들 정도의 행복한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기록된 사진들이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매거진에 꾸준하게 연재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록은 스펙터클한 장면들로 여행기와 함께 여러분들의 꾸준한 사랑에 힘입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사진에 얽힌 차마 웃지 못할 해프닝을 시작으로 돌로미티의 대표선수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에서 건진 비경을 돌아본다.
카메라가 행복한 여행지
사람이 보이시나요..?!
하니가 올려다보고 있는 곳은 장엄함 그 이상을 두른 채 우뚝 솟아있는 뜨레 치메(Tre cime_cime는 cima의 복수형이다)란 '세 봉우리'를 말한다. 사람의 모습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느덧 세 봉우리 곁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곳에 서면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세 봉우리는 가장 작은 봉우리(Cima piccola, 2,857m)와 가장 큰 봉우리(Cima grande, 2,999m) 및 동쪽에 위치한 중간 봉우리(Cima ovest, 2,973m)로 구성돼 있다. 지금 보고 있는 봉우리는 방위상 가장 작은 봉우리에 해당한다. 가까이에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며, 곧 만나게 될 두 번째 쉼터까지 멀리 떨어져야 조망이 가능하다. 이때 뜨레 치메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된다.
사람이 보이시나요..?!!
사진은 내 삶에 빠져서는 안 될 향신료이자 양념 같은 존재이다. 어느 날 카메라가 내 손에 쥐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카메라는 내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어떤 때는 화장실까지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내 앞 테이블 위에도 카메라가 놓여있다.
이런 습관은 대략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취미 생활로 시작한 필름 카메라가 나의 인생을 맛있게 요리하고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카메라에 미쳐 살았다. 틈만 생기면 절친과 함께 출사를 나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친구와 둘이 나섰던 출사 길이 언제부터인지 7명의 작은 소그룹으로 불어났다.
친구들은 이 그룹을 '7 귀공자 그룹'이라는 근사한 별명을 선물해 주었다. 별명은 그럴듯했다. 그룹에 속한 친구들은 운동(유단자)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학생회 간부들이거나.. 당시에는 조금 잘 나가는 친구들이었다. 이런 친구들을 접착제처럼 착 달라붙게 만든 게 카메라였으며, 그 가운데 나와 절친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보이시나요..?!!
어느 날 주말이 다가오면 바빠졌다. 1박 2일로 예정되는 출사 길에 동행하는 친구들을 선별(?)하는 것이다. 비용이 들었다. 1박 2일 동안 먹고 자는 숙식비는 물론 이때 사용되는 필름과 인화지(사진)에 드는 비용 등을 고려해 한 팀을 꾸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 수업이 끝나면 교복을 입은 채로 출사에 나서는 것이다.
1박 2일..! 그곳은 부산 근교로 당시만 해도 때 하나 묻지 않은 풍경들이 즐비했다. 금정산이며 법기수원지며 송정이며 기타 등등.. 그곳에는 단골 식당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이곳에서 일탈을 경험하는 것이다. 요즘 고딩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이곳에서 일어나곤 했다. 발칙하게도 우리는 그곳에서 단골 식당 아주머니가 잘 담근 동동주 맛에 빠져들곤 했던 것이다. 아는 친구들만 알고 있는 맛있는 출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간덩이가 점점 더 커진 친구들은 마침내 금정산성의 염소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행위는 입시(수능)를 앞둘 때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이때 기록된 사진들은 사람 수대로 1/n로 나뉘며 흑백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것이다. 참 까마득한 옛날 옛적 호랑이 흡연질 하던 때 이야기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 바쁘게 지내며 뿔뿔이 흩어지면 간간이 소식만 듣거나 어쩌다 만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 가운데 나의 절친은 무엇이 그토록 그토록 바빴는지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람이 보이시나요..?!!
당시 그 친구의 별명은 잘 나가던 프랑스의 영화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이었다. 기럭지 1m 80cm의 훤칠한 키에 외모가 알랭 들롱을 닮아 붙인 이름이었다. 그는 체조선수 출신이기도 했으며 집안은 넉넉했다. 출사 후 남긴 사진값을 지불하지 못한 친구에게는 공짜로 사진을 나누어 주곤 했으므로.. 그룹은 다른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던 것이다.
그랬던 친구가 어느 날 간암 선고로 투병을 하던 중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부고를 받고 한 걸음에 달려간 빈소에는 당시의 친구들과 미망인과 두 아들이 있었다. 이때부터 그가 선산에 묻힐 때까지 동행했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때가 그때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사람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친구와 잘 어울리기를 좋아한 그는 입버릇처럼 "우리 언제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하는 말을 했는데 정작 그가 먼저 세상을 등진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친구들은 친구의 어느 집을 방문해도 부모님들이 아들처럼 대해주셨다. 친구 집 아무데서나 잠을 자고 아침상이 차려지면 한 식구처럼 당연한 듯 밥상머리에 달려들곤 했다. 어떤 때는 음식 투정까지 해댓으니 친구 어머니 보시기에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마는.. 친구 어머니의 표정은 좋아 죽는 표정이다.
돌로미티의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 곁에서 사진과 친구 이야기를 소환한 건 이유가 있다. 카메라와 친구들 덕분에 세상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는 공부를 한 것이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여행지는 물론 어디를 다녀도 내 머리 속에는 영화의 시놉시스(Synopsys_Sinossi)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짬만 생기면 출사 때 담아온 사진이나 영상들의 편집을 즐기게 된 것이다. 행운이었다. 그렇게 준비된 취미생활이 3차원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4차원의 세상이 열린 오늘날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4차 혁명을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배경에 이런 취미가 없었다면 상실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짐작이 간다.
남들 다 누리는 취미생활에 혼자만 우두커니 그들을 바라보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한데.. 내겐 카메라가 있어서 인생 후반전을 나름 재밌게 살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바라본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을 한 프레임에 담는 순간 그곳은 전혀 딴 세상으로 변하며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것이다.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세계가 절묘하게 조화롭게 구성된 조물주의 계획을 뷰파인더를 통해 찾아내는 것이다. 오래된 습관이 만들어낸 작품들이자 삶을 보다 행복하게 가꾸는 일이 카메라에 묻어났던 것이다. 하니와 나는 세 봉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곧 세 봉우리의 위용을 만날 걸 생각하며 걷는 길이 피곤할 일이 있을까.. 잠시 후 뜨레 치메가 나의 뷰파인더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Scritto_il 28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