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4 나와 우리덜

조현아 논란속 국민의 갑질과 권력의 꼴갑질



 www.tsori.net


조현아 논란속 갑질과 꼴갑질
-국민이 내팽개친 수퍼갑질과 권력의 꼴갑질-





"누가 갑이며 을인가...?"

오늘(9일) 아침 인터넷을 열어보니 필자('나'라고 한다)의 예상처럼 온통 대한한공 조현아 부사장의 '램프리턴' 소식으로 가득차 있다. 객실 매뉴얼을 위반한 승무원(사무장)을 하기 시키고 램프리턴을 한 조치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조 부사장이 잘못한 것이며 그건 '갑질' 혹은 '수퍼갑질'로 매도하고 있는 풍경들. 이같은 풍경은 공중파에서도 같거나 비슷한 이유로 방송되고 있었다. 램프리턴은 조 부사장에게 국한된 게 아니라 불똥이 집안으로 번지며 동생(조현민)의 과거사까지 들추며 무차별 폭격(?)에 나선 모습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건 박근혜와 청와대의 찌라시 논란이 조 부사장의 논란 때문에 물타기가 될 가능성이 짙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는 데 그게 사실로 드러나며 인터넷은 모처럼 '물타기 풍년'이 든 것. 너도 나도 대한항공 조 부사장 일가에 대해 돌을 던지고 있었다. 참 불편했다. 갑질에 대한 논란의 핵심을 딴데로 돌리고 있는 것. 그리고 블질 혹은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이다.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혹은 누가 갑이며 누가 을인 지도 모른 채 부화뇌동하며 던져대는 돌팔매질이랄까.


운명으로 다가온 갑과 을의 계약관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갑과 을의 피치못할 계약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게 예전에는 심각할 정도 이상이었다. 여필종부의 세상에서 여자는 남자의 노예나 다름없을 정도였고, 한 번 출가하면 친정을 거들떠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댁의 귀신'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집안의 옛 모습이 이랬다. 

요즘처럼 부부간에 싸움질이 나면 보따리를 싸고 쪼르르 친정으로 내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 이때 아버지는 가장이며 갑이었다. 집안의 일 모두는 아버지의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 되던 시대. 그게 합리적이든 불합리적이든 아버지의 판단 하나로 집안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곤 했다. 이게 종가집에서 자라며 본 아버지들의 수퍼갑질이었다. 수퍼갑질 사회는 모든 게 종적서열이었지, 횡적서열로 대변되는 '민주적인' 생각은 곧 퇴출과 다름없었다. 보다 민주적인 생각과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 

나같은 경우는 늘 이같은 사회가 불만이었다. 맨 먼저 학교 교복은 내림차순으로 물려입었다. 형이 입던 교복을 물려받는 관계로 인해 셋째의 슬픔 내지 불만은 늘 어머니께로 향했다. 어머니가 만만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비록 아버지편(?)을 드셨지만 아버지의 권력에 비하면 무진장 따뜻한 배려가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인가 형편이 나아지길 기다렸다가 불만을 다른 방법으로 해소해 주고 있었다.




운명으로 따라다니는 갑과 을의 사회

이같은 사회현상은 비단 집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즉각 갑과 을의 관계가 뼈저리게 다가온다. 어릴 적 학교에 가면 아침 조례시간에 그 추운날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벌벌떨게 만든다. 고무신을 신은 발가락 끝의 감각이 무뎌올 즈음 교장선생님의 훈시는 또 왜 그렇게 긴 지...불만은 그저 궁시렁거림으로 끝내야지 교장선생님께 대들 수가 있었을까. 교실로 돌아오면 다시 갑과 을의 관계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어지고, 이런 사이클은 대략 학업을 마칠 때까지 이어지다가 취직을 하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성인이 되면서 사회생활은 집안에서 느끼던 '구속'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얼마간의 자유가 주어지지만, 이번에는 가족과 형제들와 함께 나누던 갑과 을의 관계를 혼자서 다 해결해야 한다. 아픔을 공유해 줄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다. 갑과 을의 충격 전부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은 가부장적 사회와 달리 독재적이 아니라 보다 민주적이다. 자기의 합리적인 판단 등에 따라 자기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는 곳. 

좋으면 취하고 싫으면 버리거나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 리그가 모여 하나의 큰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게 나라이며, 그 같은 사회를 적절하게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게 정부의 기능이라고 할 때, 나라를 이루고 있는 민중은 헌법에 의한 갑이다. 다 아시는 이야기를 길게 끼적거린 이유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민중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내 생각을 '안타까움'으로 담아보고 싶은 것이다.


갑과 을의 운명을 벗어날 절호의 찬스

우리는 나라의 국정책임자를 뽑을 때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거로 뽑게 된다. 개개인의 한 표가 모여 특정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게 되고 다수의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이끌게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2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한 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을 위임받은 대통령의 정체성은 국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이게 상식이다. 

독재국가가 아니라면 갑과 을의 관계는 헌법이 명시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행해질 것이며, 국민의 바람대로 국정이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 국민이 여전히 갑이며 '수퍼갑질'도 국민의 의사에 따라야 하는 게 옳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의 형편은 그러하지 못하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하지만, 지난 18대 대선에 깃든 불협화음은 반칙(댓글사건)이 동원된 '부정선거'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반칙으로 뽑은 국정최고책임자 때문에 나라가 바람 잘 날 없는 것. 그 정점에 새누리당 소속 박근혜가 있었다. 

그게 요즘 '찌라시 사태'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권력의 정체성 문제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이 승복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쳤다면 주어진 표 만큼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겠지만, 사정이 그러하지 못하다면 '짝퉁'으로 인정돼 어떤 일을 해도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 이때 갑과 을의 관계는 명확해 진다. 짝퉁이 갑이 아니라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수퍼갑이 아니라 을이며, 진정한 갑이며 수퍼갑질을 해야 할 사람은 민중들이라야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갑질의 사회적 속성 

그렇다면 조현아 논란 속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갑질' 혹은 '수퍼갑질'은 어떤 성격일까.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회사와 사회는 전혀 다른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커지며 파이를 보다 수평적으로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됐지만, 이른바 '경영권'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수직적이며 종적인 이른바 '갑질'이 인정되는 사회다. 

만약 이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질서가 깨지면 어떤 결과를 부를까. 회사는 망하고 노동자들은 보따리를 싸야 한다.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적절히 절충하지 못하고, 이른바 '쌍방간 의무'는 저버리고 '권리다툼'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면 결국 회사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것. 회사의 조직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모습 등으로 나타난 '갑질'이자 '계약관계의 속성'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내린 결정은 과정을 문제삼은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것이라 사료되는 것. 달을 가르킨 손가락만 본 것이랄까. 사람들이 보는 건 갑질의 속성을 본 게 아니라 사무장더러 '내리라'는 결정과 '램프리턴'만 보고 있었던 것. 민중들은 매우 감성적인 판단으로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회적 비난이 대한항공을 구하겠는가 아니면 사무장을 구하겠는가. 누구에게도 득이 안 되는 갑의 권리에 끼어들어 오히려 사무장과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구기는 데 열중하는 것.


갑이 내팽개 친 '수퍼갑질'과 꼴갑질

따라서 이러한 모습을 '세월호 참사로부터 배우라'며 내 생각을 말한 것이다. 비행기 혹은 선박이 이륙하거나 출항한 다음에 일어나는 문제는 모두 특정 회사와 자국의 이미지로 귀결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세월호 참사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본 '찌라시 논란'을 일깨운 것.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갑과 을의 위치를 반복하게 된다. 조 부사장의 논란을 보다 이성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 혹은 현상들은 모두 정치판으로 출발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 등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가차없이 고발해 바로잡아야 하는 게 모든 권력의 주체이자 갑인 민중들의 몫인 것. 국정책임자의 일탈을 잘 지켜보고 견제하지 않으면, 주객이 전도되어 민중들은 아무때라도 '하차'가 아니라 '버림'을 받는다는 건 유신독재자 등으로부터 이미 학습한 내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찌라시 논란은 국민을 찌라시로 여길 정도로 권력의 중심부가 다 썩어자빠진 모습이다. 

그 가운데서 박근혜와 김기춘 등이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을 함부로 고발하고 있고, 언론의 기능을 담당해야 할 '민중들의 소리'는 엉뚱하게도 갑질을 딴 데로 행사하고 있는 듯한 안타까운 풍경. 국민 1인이 대한항공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해 봤자고...아무렴 조 부사장의 갑질이 권력의 꼴갑질 보다 더할까. 아버지와 왕의 절대권력(?)이 사라진 민주사회에서 민중들이 능력 밖의 찌라시 권력을 수퍼갑질로 견재하지 않으면, 날이면 날마다 꼴갑질을 보게 될 것이란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