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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수원화성문화제,왕을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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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 참관 후기
-제1부,왕을 기다리는 사람들-




"아이들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자리를 깔고 퍼질러 앉은 곳은 수원 화성의 북문(장안문)과 남문(팔달문)을 잇는 정조로(正祖路)곁이다. 녀석들은 어느덧 2시간도 더 넘게 이곳에 퍼질러 앉아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정조대왕능행차 연시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대왕능행차에 빠져든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부터 출발한 정조대왕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가 정조로를 따라 지나는동안, 연도에 모여든 시민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과 외국인들까지 합세해 일대 장관을 이루었던 것. 마치 정조대왕이 현현하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 중에 유난히도 눈에 띈 아이들. 아이들을 보자마자 정조대왕의 불행했던 어린시절이 단박에 스쳐 지나가는 것. 어쩌면 당신의 부친께서 비운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고아처럼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당신께서 몸소 겪은 불행을 되물림 하지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한 결과, 우리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를 통해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정조대왕의 모습을 애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10월 9일 오후에 만난 정조대왕능행차연시 및 시민퍼레이드를 돌아본다.




제1부,왕을 기다리는 사람들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정조대왕의 비하인드 스토리


필자('나'라고 함.)가 아는 수원화성문화제는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하는 축제였다. 자기가 겪은 불행을 행복으로 승화시켜 백성들에게 되돌려 준 지혜롭고 어진 왕은, 몸소 효(孝)를 실천해 보인 동시에 백성들이 지긋지긋 하게 여기던 당파정치 개혁을 수원화성 축조를 통해 이루고자 했다. 수원화성은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함과 동시에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실험무대였다고나 할까. 


정조대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는 데, 종가의 엄한 가풍에서도 할머니께서 손자를 끔찍히 사랑한 덕분에 나는 종종 아버지의 회초리 맛(?)을 피할 수 있었다. 아부지께선 그때마다 '아이들의 버르장머리를 잘 못 가르치신다'며 역정을 부리셨지만,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손자편을 드셨다. 그러면서 할머닌 사도세자 이야기로 역공(?)을 하시곤 했다.





"니 새끼를 그렇게(매질) 하면 사도세자와 뭐가 달라...!"


"엄니,아무렴 내 새끼 죽일려고 그럽니까!..."


할머니가 아부지를 꾸짖는 건, 그 어떤 교육이라 할지라도 매를 함부로 들지말라는 교훈이 담겨있었다. 매를 들기 시작하면 그게 언제인가 폭력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폭력을 부르는 사육이 된다는 것. 할머니는 그 과정을 조금은 비약적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예로 들곤 하셨다. 뒤주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정지(부엌) 옆의 쌀 뒤주가 그렇게 으시시 할 수가 없었다. 뒤주의 공간은 아이들이 들어가도 몸을 함부로 돌리지 못할 공간인 데 그 속에서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똥오줌 조차 못가렸다면 어떤 형편이었겠는가.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제12대 정조대왕 역(役) 김웅기 씨(가운데)와 염태영 수원시장(우측)



내 앞에 나타난 정조대왕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8일만에 굶어 죽었다.(왕의 아들이 굶어 죽다니...!)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효심 깊은 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후에 장헌(莊獻)으로 상시(上諡)하였음.莊獻世子)는 뒤주 속에서 목숨을 거둔 것. 돌아가신 할머니는 생전에 그 이야기가 얼마나 가슴 속에 맺혔든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등 잘못을 저질러 아부지한테 소환되면, 즉시 '할머니~' 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구조요청에 119처럼 달려들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던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 우습기도 하고 가슴 한 편이 아련해 온다. 두 분 모두 하늘나라에 가 계신 지 꽤 오래됐다. 정조로를 따라 장안문 쪽으로 이동하는 데 능행차 선두가 눈에 띄었다.


"대왕 납시오~"






이날 날씨는 더운 편이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면서 능행차 연시 참가자들의 복장까지 더워 보였다. 하지만 연도에 줄지어선 사람들의 표정은 밝게 빛났으며, 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가 흐트럼 없이 정조로를 통해 지나는동안 시민들이 손뼉을 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들은 정조의 화산능행차 기간동안의 '왕의 천도(遷都)'를 학수고대 하며 1년을 기다렸던 사람들.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에 비친 우리의 현주소


그분들 가운데 나의 족적 하나를 남기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왕이 장안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면 수원화성은 온통 잔칫날로 변함과 동시에 수원화성이 수도로 변한 듯한 모습들. 정조대왕이 행궁에 머무는동안 수원의 백성들은 분함과 원통함이 동시에 사그라드는 것인 지.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의 표정들을 보면 마음 속에 또아리 틀었던 트라우마가 봄 눈 녹듯 사라진 것 같았다. 당신께서 남기신 발자취를 통해 후손들이 행복해 한다는 건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걸 반증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정조대왕 역할의 '짝퉁'에 열광하는 모습을 통해 '짝퉁 신드롬'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단박에 오버랩 될 수 있는 것. 우리는 최소한 지난 6개월동안 행복하지 못했다. 불행했다. 참담함이 사회를 휩쓸고 지나는동안 정치 권력은 누구 하나 분하고 원통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불과 200여 년 전 정조대왕이 겪었던 불행에 비추어 볼 때, 304명의 참사는 단 한 사람이 치룬 정치적 희생양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각박하고 무서운 세상으로 변한 것. 사람들은 탈출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수원화성문화제를 통해 되찾은 작은 행복


정치적 구심점을 잃은 권력이 방황하는동안,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가던 때 정조대왕이 납신 것이다. 그는 당신이 몸소 겪은 불행을 폭정으로 되돌린 게 아니라, 능행차를 통해 정치(권력)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던 것. 200여 년정도의 시간차가 나지만 정조대왕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정조로 곁의 사람들의 표정만 참조하면, 우리 가슴 속에는 말 못할 트라우마가 깊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넌지시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거의 처음 본 것과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짝퉁 임금님'을 통해 '짝퉁 권력'의 실체를 학습하며 즐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정치.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마다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는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교과서로 자리매김 하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고 말한다. 불행이 연속되면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 무언가 돌파구를 필요한 시점이었다. 정치세력의 유지와 권력을 위한 일이라면 당신의 아들까지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이는 세상이라면, 그게 인간이 사는 옳바른 세상이 아닌 것처럼,자국민 304명의 억울한 죽음을 방관하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를 그리워하게 될까.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를 취재하는동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단 한 사람만의 죽음만으로도 후손들의 가슴에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라면, 304명의 죽음이 가져다 줄 억울함과 분함은 하늘을 찌를 듯 하지않는가. 이날 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를 카메라에 담는동안 실제 정조대왕을 알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주어진다면, 대왕 앞에서 엎드려 하소연 하고 싶은 생각이 퍼뜩 들기도 했다. 관련 당사자들을 '혼내주십사' 하고...


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주로 그랬을까. 한 꼬마 아가씨가 장안문 위에서 퍼레이드 행렬을 망원경으로 살펴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조금전까지 녀석은 시무룩 했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표정까지 뒤바꾼 정조대왕능행차 유래와 규모는 어땟을까.





정조대왕능행차 유래와 규모


주지하다시피 정조대왕능행차의 유래는, 1776년 3월 조선조 제22대 왕으로 즉위한 정조가 비운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조선 제21대 영조의 둘째 아들,莊獻世子)의 묘를 1789년에 수원부 화산(화성시 태안읍)으로 옮긴 후, 지극한 효성으로 13차례나 참배하며 행해진 '왕의 행렬'을 말한다.


정조의 재위기간중 가장 큰 규모로 시행된 1795년 2월 능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반차도 기록에 따르면, 동원된 사람이 1,505명, 말이 516필, 또 그림에 생략된 인원을 합하면 사람이 1,807명, 말이 796필이며, 능행차에 동원된 전체인원은 사람이 5,661명, 말이 1,417필이라고 전한다. 당시 사정을 감안하면 왕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원이 동원된 놀라운 모습으로, 마치 왕의 천도(遷都)를 보는 듯한 모습들. 능행차 기간동안 도읍을 옮긴 것과 다름없는 나라 최대 행사가 수원화성 일원에서 펼쳐진 것이다. 





정조대왕능행차 구성


정조대왕 능행차의 특징은 관례상 국왕이 중앙에 위치하는 다른 행차와는 달리 정조대왕이 맨 앞에서 인도하고 있다.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행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의 행렬은 경기감사가 선두에 선다. 그 다음에 총리대신, 훈련대장, 금군별장, 어보마, 정조가마, 혜경궁홍씨 가마, 정조의 두 여동생 가마, 선기장, 장용대장, 도승지, 병조판서 순으로 정조대왕의 능행렬이 이어진다. 





수원화성문화제에서 무엇을 즐기나


그러나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 반드시 능행차 행렬 뿐만 아니다. 능행차 행렬이 장안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정조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퍼포먼스와 볼거리는 이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 정도로 재밌다. 특히 시민퍼레이드 참가자들이 관람객들 앞에서 보여주는 묘기와 퍼포먼스는 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붙잡아 놓을 정도다. 사람들은 왕의 능행차 모습에 빠져들다가 시민 퍼레이드 앞에서 넋 놓고 즐거워 하는 것이다.





수원화성문화제의 놀라운 먹거리와 즐길거리


아마도 여기까지 스크롤바를 굴리며 수원화성문화제 풍경을 자세히 보신분들이라면 나의 관전기에 공감하지 않을까. 사람들의 표정을 잘 살펴보면 평소 굳어있던 안면 근육이 마음대로(?) 이완된 줄도 모른 채 넋 놓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봤을 것. 이분들은 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많은 분들은 능행차와 퍼레이드가 끝나면 어디로 가게될까. 




궁금증은 단박에 풀리게 된다.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는 닷새동안 수원은 그야말로 (질서있는)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하면 도착하는 이 축제를 통해 수원의 매력에 푹 빠져드는 데 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 등이 눈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먹거리들이 입을 행복하게 만들며 수원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 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가 끝나는 지점의 남문(팔달문) 근처에는 시각과 미각을 무한 자극하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남문 근처에는 지동시장 등 재래시장이 즐비하고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은 사람들이 워낙 붐벼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줄을 서야 맛 볼 수 있는 곳.




뿐만 아니다. 남문 곁 수원천 변에서 가까운 곳에는 전국 최대의 '통닭거리'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어 세운다. (그깟 닭이?...얕보지 마라!!) 생전 이런 곳 처음봤다. 통닭집에 불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루 종일 통닭을 튀길 정도며, 줄지어 선 사람이 통닭거리를 가득 메운다. 통닭타운 내부로 들어서면 더 놀라게 된다. 드넓은 실내에 빼곡한 손님들이 매장 지하부터 2층까지 가득 메우고 있는 풍경들. 




사람 구경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희한한 도시가 축제중에 벌어지며 평일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들끓는 곳이다. 더군다나 수원화성문화제 기간 중에는 '음식문화축제'가 수원행궁 주차장에서 펼쳐지는 데 이곳에서 그 유명한 '수원갈비'를 맛 볼 수 있다. 수원갈비는 다른 지역의 갈비와 달리 한뼘만 하게 자른 큼지막한 '통큰 갈비살'을 발라 구워 먹는 것. 축제 기간 중에는 이곳에서도 줄을 서야 겨우 맛 볼 수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수원화성문화제동안 '즐길거리'도 넘쳐난다. 정조대왕이 능행차 당시 머물렀던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신풍루 앞에서 박진감 넘치는 무예24기 시범공연이 열리고, 봉수당에서는 혜경궁홍씨 진찬연정조대왕 친람 과거시험이 치뤄지기도 한다. 또 수원 화성의 백미로 불리우는 방화수류정에서는 달빛음악회도 열리는 등 수원은 온통 잔치 분위기로 변한다. 지난 9일~10일 이틀동안 축제의 현장을 돌아보며 행복해 했는 데 그 행복했던 장면 여러편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테마로 엮어 연속으로 전해드린다. 정조대왕능행차가 선물한 귀한 장면들이다. 이 모두가 효심 지극한 왕이 행차에 나서야 가능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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