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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나와 우리덜

[박근혜 통일준비위]잘못 알려진 박정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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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려진 박정희의 눈물
-박근혜,독일서 챙겨올 박정희의 눈물?-
 




너무 뻔한 줄거리였던가...



요즘 필자의 관심은 주로 국정원에 의한 검찰의 조작의혹 사건에 있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발생한 댓글사건 이후 상식 밖의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의 도마 위에 올라오고 있었는 데 조작의혹 사건이 방점을 찍어준 것이다. 국가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심정에 절망감을 더한 게 조작질로 드러나고 있었던 것. 이러한 일은 국민 1인만 황당하게 만든 게 아니라 세계인을 놀라게 만든 초유의 사건이었다. 세상에 수 많은 정보기관들이 존재하지만 우리처럼 백주에 대놓고 대담하고 민망한 조작질을 일삼았던 사례를 보지 못했던 것.

국정원 협력자가 자살 퍼포먼스(?)를 통해 대국민 조작질을 한 사건은 영화에서 조차 만나보지 못했던 것인 데, 아마도 이런 황당한 조작의혹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대박을 터뜨릴 것 같기도 했다. 불과 1년 전부터 태동한 이른바 '댓글정부'의 정체성이 만든 해프닝이라고나 할까. 새 정부가 출범한 이래 1년 여의 세월이 흐르고 있지만, 여전히 댓글사건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조작질 정국에 발목이 붙들린 모습이 댓글정부의 현주소로 판단되는 것.

따라서 댓글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일찌감치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능력 밖의 일로 설정을 해 놓고 보니 가슴에 와 닿는 정책은 전무해 보이는 것이다. 특히 댓글정부가 내놓은 '창조경제와 통일대박' 같은 용어는 시쳇말로 '듣보잡'이어서 '무슨 꿍꿍이 속이 있나' 의심을 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은 박근혜가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와 독일을 방문한다는 소식과 함께 양념처럼 보탠 게 '박정희의 눈물'이었다. 



  
잘못 알려진 박정희의 눈물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권력유지에만 몰두한 유신망령의 부활이 청와대로부터 기획되고 있었을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피부로 와 닿지 않았던 창조경제와 통일대박의 실체(?)가 독일에 가 있었던 것이다. 창조경제와 통일대박이라는 키워드는 의외로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었는 데 쉬쉬 하고 감추어둔 것인지. 이들의 기획물을 대략 정리해 보니 이랬다. 

독일 국빈방문-박정희 경제원조 부각(박정희 눈물 조명)-통일구상발표(베를린 장벽 회상)-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창조경제와 통일대박 부각-유신독재 찬양 내지 합리화작업 등으로 이어지는 수순 정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따라서 몇몇 친정부 언론에서는 '박정희의 눈물'을 소재로 유신망령의 실체를 미화하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지난 3월 14일자 <국민일보 쿠키뉴스>는 박정희의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지난 64년 12월 10일, 작은 키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한 동양인이 독일 북서부 함보른 광산을 찾았다. 그가 마이크를 잡자 한국 광부들이 모여들었다. "나라가 못살아 여러분들이 이국땅 지하 수 천 미터에서 이런 고생을 합니다. 가슴이 너무 아픔니다." 광부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은 남자도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았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독일은 고마운 나라였다. 집집마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보릿고개 시절, 최우방이라던 미국보다도 먼저 상업차관을 한국에 제공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구걸하다시피 차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였다. 그렇게 들여온 차관 1억 5천만 마르크(약 3500만 달러)는 우리 경제개발의 초석이 됐다.1970~80년대 고도성장기는 독일 상업차관이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린 땅. 일터 조차 없던 고국의 아픈 현실 때문에 인력까지 송출해야 했던 곳. 그런 독일 땅에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적인 발길을 내딛게 된다.

오는 25일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 초청으로 국빈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울던 아버지의 눈을 언론 사진으로 봐야했던 12세 어린이는 이제 현직 한국 대통령, 그것도 첫 여성 대통령에 올라 독일 수도 베를린 국제공항에 첫 걸음을 내딛는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선친에 대한 기억, 아니 더 나아가 선친이 기필코 이루려고 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를 것으로 짐작된다. 작 전 대통령의 생전을 떠올리며 50년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최근 현대사를 오버랩 할 게 틀림없다..."
<출처: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008136008&cp=du

몇 줄의 글을 끼적일 수 있는 동력원이 이런 역사 왜곡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수법 속에는 안량한 치적을 침소봉대하는 습관이 있다. 아울러 저널리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이비 기자들의 아부성 기사를 보면 역겨움 차원을 너머 연민이 느껴질 정도이다. 언론사가 정론직필은 하지 못하더라도 찌라시를 만들어 독재를 찬양하는 따위의 기사는,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살인행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박정희의 눈물은 정치쇼


위 박정희의 눈물을 담은 기사 몇 줄은 정말 중요한 팩트 다수를 세탁(?)하고 박근혜와 유신독재자의 박정희의 독재 행위를 미화시키는 정권의 찌라시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사실은 전혀 다르다. 대통령의 눈물 일화는 2006년 11월 이수길 박사의 증언을 통해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박사는  파독간호사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2006년 11월 <기자협회보> 등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차관은 1961년 12월 재건 차관 명목으로 집행됐는데, 이것은 장면 정권 때부터 추진된 것"이라며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에 왔을 때 환영 나온 광부와 간호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자 뤼브케 당시 서독 대통령이 눈물을 닦아주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일화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1999년 9월16일 '대통령의 눈물'부터 2008년 7월2일 '탄광에서 울어버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같은 내용의 기사를 10여 차례 계속 내보냈던 것이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비하인드스토리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미화되기 시작하며 최근까지 이어진 것이다. 또 2008년 9월2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을 담보로 상업차관을 들여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간호사와 광부의 급여를 담보로 차관을 들여온 뒤 박 전 대통령이 미안함과 서러움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원인무효가 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12월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공동대표 박효종)은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를 서술한 교과서 <한국 현대사>(기파랑 펴냄)에 '대통령의 눈물' 일화를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정치에 이용한 나쁜 사례이자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노고를 왜곡.호도 하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이다.
 

아울러 <국민일보>가 전한 박정희의 눈물 가운데는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이 차관을 거부한 이유를 빼놓고 있다. 결정적인 독재찬양 모습이랄까. 박정희가 존 F 케네디로부터 차관을 받지 못한 이유는 5.16쿠데타 직후 미국이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5.16쿠데타로 인해 원조까지 중단한 상태였다. 그러나 유신독재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추종자들이 그런 치부를 굳이 더해놓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목숨걸고(?) 빼야 할 부끄러운 역사는 두루뭉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고 있는 것. 고도성장 내지 한강의 기적으로 포장하고 있는 이들의 수법은 유신망령의 알짜배기 속임수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밥 술이나 뜰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인 데 그걸 통째로 편집한 게 유신독재세력 추종자들이었던 것. 그러한 사실을 살펴보고 글을 맺는다. 베트남 전쟁을 기록해 둔 <위키백과>는 한국의 박정희 정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위 자료사진들은 보물선 남해의 독일마을 축제 당시 모습
 

 


베트남 전쟁의 잔혹사와 박정희의 과거사 
 
"당시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권은 반공주의를 내걸고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였다. 대한민국의 파병은 미국의 요청이 있기 전인 1961년 박정희가 존 F. 케네디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케네디의 정책은 베트남 전쟁에 미군을 직접 투입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케네디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린든 B. 존슨은 1964년 대한민국에게 의료 부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중략)... 대한민국의 베트남 파병 병력의 누계는 32만명에 달했다. 베트남파병 병사의 의무 기간은 1년이었고, 파병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 당시의 베트남에 주둔한 한국군의 수는 5만여 명이었다. 파리 평화 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면서 대한민국 역시 철군하였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한국군의 전사자는 약 5천여명이었고 1만 1천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국군은 전쟁 중에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전투원 약 4만 1천 여명을 사살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한국군 병사에게 2억 36백만 달러를 지불하였고, 대한민국은 파병의 댓가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대한민국의 GNP는 파병을 전후로 하여 5배 가량 성장하였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B%B2%A0%ED%8A%B8%EB%82%A8_%EC%A0%84%EC%9F%81

놀라운 일 아닌가. 박정희의 짝퉁 눈물 속에서 빠진 베트남 전쟁의 잔혹사 속에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피로 바꾼 달러 2억 36백만 달러가 빠져있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외화벌이를 한 사실은 있지만, 그게 우리 경제개발의 초석이 되었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파병의 댓가로 경제발전을 이루고 GNP는 파병 전후로 5배 가량 성장했다는 것.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게 있다. 박정희가 최초 미국에 요청해 참전한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을 잊어서는 곤란하다는 것. 



*베트남전 자료사진=구글이미지


한국군은 전쟁 중에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전투원 약 4만 1천 여명을 사살한 것이며, 그 댓가로 2억 36백만 달러를 지불받은 사실과 다름없는 것.박정희는 미국이 조작질한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으로 개입한 베트남 전쟁의 '더러운 전쟁'의 파트너가 되었던 것이다. 마치 미국의 청부살인에 응한 것 같은 게 한국군의 모습이었다.(부끄러운 일 아닌가...) 따라서 박정희의 유신체재를 두둔하거나 미화하는 추종세력들이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빼 놓고 '경제개발' 혹은 '한강의 기적'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 그 자체인 것. 

그러면서 찌라시를 통해 뿌려둔 '박정희의 눈물'은 "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는 것. 이런 앵벌이식 차관구입이 창조경제의 모습인가 아니면 전쟁터에 젊은이들을 파병할 목적이 창조경제 모델인가.

역사는 참 아이러니 하다. 박정희를 미화한 찌라시가 박정희와 박근혜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난해 댓글사건에 이은 국정원과 검찰의 조작의혹 사건에 나타난 친미 반공주의자들의 조작질과 거짓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버림받기 안성맞춤인 것. 그래서일까. 
독일 순방에서 챙겨올 것으로 여겨지는 '박정희의 눈물'은 왜곡된 가족사로 불행한 일로 여겨진다. 아울러 우리 실정과 전혀 비교조차 안 되는 통일대박 같은 추상적인 기획은 댓글정권에서 입에 담기 조차 버거운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남한사회의 국론부터 먼저 통일하는 게 급선무인데 어쩌자고 오지랖 넓은 일만 꿈꾸고 있는 지...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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