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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생태교통,자전거만 보고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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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수원화성 더듬기
-생태교통,자전거만 보고 올 것인가-

 

화홍문에서 바라 본 초가을의 방화수류정...
 



그 장면을 다시 동북포루에 올라 총안 구멍을 통해 내려다 보니 이런 모습. 




생태교통 축제가 시작되던 날 우리는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를 거쳐 봉수대까지 수원화성을 돌아 다시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수원화성의 절반 정도만 투어한 셈이다. 하룻만에 축제를 경험하고 수원화성 전부를 돌아보기란 쉽지않은 것. 따라서 생태교통 시범 운영이 한창인 수원화성의 행궁동 일원을 방문하게 되면, 화서문로를 빠져나와 바로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안문을 거쳐 북동적대-북동포루-화홍문-동북각루(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동암문-동장대(연무대)로 이어지는 코스의 성곽을 걸어보시라고 추천해 드리는 것이다. 서울이나 대도시 또는 여느 지방에서 느낄 수 없는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 방화수류정을 중심으로 한 수원화성의 풍경이자 수원화성의 백미다.




동북포루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수원성곽을 축조할 때 세운 누각 중에 하나인데 특히 경관이 뛰어나 방화수류정이라는 당호(堂號)가 붙여졌다. 수원성의 북수구문(北水口門)인 화홍문(華虹門)의 동쪽에 인접한 높은 벼랑 위에 있는데 그 아래에는 용연이라는 인공 연못이 있다.  

방화수류정은앞면 3칸, 옆면 3칸의 아(亞)자형 평면구조이며, 지붕은 8각지붕을 기본으로 남북에 합각을 더 세워 십(十)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삼절병통(三節甁桶)이 얹혀 있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 정명도(程明道)의 시(詩)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그 이름을 따왔으며, 현판의 글씨는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이 썼다고 전한다.




우리는 방화수류정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북암문을 거쳐 동북포루로 향했다. 주지하다시피 도성을 쌓을 땐 방위를 상징하는 4개의 문 외 비밀스러운 통로를 따로 만들게 되는 데 북암문이 그것이다. 화성에는 모두 5개의 암문이 있는 데 양쪽으로 벽돌문을 쌓은 건 북암문이 유일하다. 덧붙인다면 암문이란 성곽의 깊숙한 곳이나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드나들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설치한 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수원화성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개의 문은 장안문과 팔달문 화서문과 창룡문이 있다.




동북포루로 가는 길에 만난 한 커플이 손을 잡고 성곽을 거닐고 있다. 참 다정한 모습. 성곽에 '장안위좌부'라는 비가 눈길을 끈다. 정조 임금께서 수원화성을 행차하실 때 장안문 통과하여 화성행궁에 머무는 데, 당시 장안위좌부는 장안문의 좌측에 위치해 임금과 성을 호위한 부대가 위치한 곳. 



참고로 성의 방위는 늘 왕조의 궁궐(임금)을 중심으로 방위가 결정된다. 서울(한성)의 경우 법궁(경복궁)의 좌측인 동쪽에 종묘(宗廟)를 두고 서쪽에 사직(社稷壇)을 두게 되는 것. 그러나 수원화성의 경우 정조임금이 머물렀던 화성행궁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왕조근간 시설의 조영 원칙인 '좌묘우사(左廟右社)'와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성행궁을 지을 때 행궁(임금)이 바라보는 방위가 동쪽이므로, 왕조의 정통성과 종법성을 중시한 행궁의 배치가 아닌가 싶다.




방화수류정을 지나 동북포루로 발길을 옮기면서 구불구불 곡선이 길게 이어진 성곽을 바라보면 멀리 새로 짓고 있는 빌딩이 눈에 거슬릴 정도다. 삐죽한 직선이 점과 선과 면의 결정체인 수원화성을 위협하고 있는 듯한 불안한 모습. 도시인들이 이곳에서 힐링을 경험하는 것도 도시가 잃어버린 곡선 때문일 텐데 옥에 티 같은 건설현장이다.




불과 200여 년 전 우리 선조님들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건축물 등을 모두 친환경적으로 건설했는데, 수원화성의 축조 모습이 그런게 아닌가 싶다. 벌판에 봉긋 솟아오른 나지막한 팔달산과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동북포루는 도무지 높이를 느낄 수 없는 높이다. 성문의 속성상 문을 열었을 때는 길이 되고 문을 닫게 되면 성벽이 되는 데,수원화성의 경우 불통의 상징인 유럽의 여느 성과 달리 문을 열면 단지 성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아니다.

수원화성은 백성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사방으로 열리는 소통 구조다. 그곳에서 한 달동안 세계최초로 '생태교통 시범 운영'을 하고 있는 것. 어느덧 수원화성은 세계인과 소통을 나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이다. 그곳에 가시거들랑 부디 장안문에서 동북포루 쪽으로 걸음을 옮겨 보시라. 부드럽고 바른 길을 따라 걸으면 정조임금의 업적은 물론 왜 '바를 정(正)'자(字)의 칭호(묘호,廟號-임금들이 죽은 후에 신주를 모시는 종묘의 사당에 붙인 칭호. 또 묘호는 왕이 죽은 후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그 묘실(廟室)을 지칭하기 위해 조정에서 의논해 정하는 것)를 받게 되셨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 




동북포루가 초가을의 지는 햇살에 눈부시다. 동북포루(東北鋪樓)는 각건대(角巾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 135보 4척쯤 되는 거리에 있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서 용두(龍頭)를 눌러 굽어보고 있다.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치성의 위에 지은 집을 포(鋪)라 한다"고 했다.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동북포루가 서 있는 위치를 잘 살펴보면 수원화성의 팔달산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곳으로, 화홍문에서 동장대(연무대)까지 엄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설물임을 알 수 있다. 총안 구멍은 각각 화홍문과 동장대 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동북포루의 형태는 "성벽 바깥으로 돌출된 치성이 18척 5촌이 튀어 나왔는데, 외면의 너비는 24척이고, 현안(懸眼) 1구멍을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다. 7영(七楹) 3간이고, 높이는 여장 위로 6척 8촌이 솟았는데, 전체 높이는 13척이다. 여장의 3면은 모두 벽돌을 사용하였고, 여장 안은 벽등을 이중으로 쌓았는데, 아래 위에 네모난 총안 구멍 19개[사방 각 9촌], 누혈(漏穴) 11개[사방 각 4촌]을 뚫어 놓았다. 누의 위 4면에는 판문을 설치하고 외면과 좌우에는 사안(射眼)을 내어 놓았다. 내면에 벽돌 층계를 설치하여 오르내리게 하였다.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고, 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고 전한다. 생태교통 축제에서 자전거만(?) 보고 올 게 아닌 것 같다. 당장이라도 온 몸을 휘감을 듯한 편안한 곡선에 몸을 맡기는 게 생태교통 축제를 만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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