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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세 번 망하고 터득한 '방어' 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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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망하고 터득한 '방어' 횟집
-우도횟집 '회양과 국수군'의 모든 것-

 

 



"여보...나...식당 차리고 싶어..."


우도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서빈백사 해변에서는 바람이 무시로 불어댓다. 5월의 날씨가 아닌 듯 바람의 땅 우도의 바람은 그칠줄 몰랐다. 일행과 함께 들른 횟집. 저녁을 겸해 술을 한 잔 나누는 자리. 그곳은 널리 소문난 맛집이자 횟집이었다. 인터넷을 열어 <회양과 국수군>을 검색하면 곧바로 상위에 노출되는 맛집. 그곳에서 우도의 또다른 맛을 느낄 줄 꿈에도 몰랐다. 맛집은 다 거기서 거긴줄 알기 때문이었다.

여행지에 가면 그곳의 풍물과 사람을 좋아하는 필자는 대화를 통해 현지 사정을 가늠하곤 했다. 여행지의 풍광은 눈으로 볼수 있지만, 속사정은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행지가 보다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우도에 도착해 저녁겸 술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굵직하고 큼지막 하게 썰어진 방어회를 보는 순간 이 집의 남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출출하던 차에 순식간에 사라진 방어회 4인분. 회 한 점만 입에 넣어도 입안이 두둑하게 느껴지고 회 만으로 배가 불렀던 횟집. 이날 회만 먹은 게 아니었다. 이 집의 또다른 명물 회국수까지 챙겨 먹은 것. 횟집에서 시쳇말로 '배터지게' 먹은 집은 '회양과 국수군'이 아니었나 싶다. 저녁 때가 되어 앉을 자리가 없이 꽉찬 곳. 방어회가 바닥날 때쯤 이 집 주인장(김법진 씨)을 호출(?)해 방어회가 유명해진 비결을 듣게 됐다.

그 자리에서 주인장이자 요리사인 김 씨는 회양과 국수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그는 세 번 망한 끝에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횟집 사장. 그가 털어놓은 뒷담화 속에서 "여보...나...식당 차리고 싶어..."하는 아내의 간절한 소망이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횟집에서 방어회만 먹은 게 아니라 우도가 고향인 김 씨의 성공스토리를 동시에 듣게 된 것. 그 현장으로 가 본다.
 

우도횟집 '회양과 국수군'의 모든 것
 

 

 



낮에본 우도 서빈백사 해변의 모습. 멀리 성산일출봉의 실루엣이 서빈백사 해변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국적 풍경. 우도의 회양과 국수군 횟집을 나서면 바로 코 앞에 나타는 풍경이다. 그곳에 어둠이 내리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횟집에 불이 켜진다.
 

 

 



우도에 어둠이 내리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이곳. 우도를 찾은 사람들은 저마다 먹거리를 찾아 떠난다. 화산암으로 제주의 비바리 모습을 조각한 해녀상 너머로 불이 켜진 집 안에서는 사람들이 기분좋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여행지에서 맛있게 먹은 먹거리는 여행지를 오래토록 기억나게 해 주는 마법같은 존재일까. 우도를 다녀온지 어느덧 보름이 다 돼 가지만 맛에 대한 기억은 유별나 후기를 쓰면서까지 그 맛이 입안에 감돌며 침샘을 자극한다. 도대체 방어회가 어땟길래...
 
 

 

 



이랬다...두툼하고 큼지막하게 썰어진 방어회...(사진은 거의 실물 크기다.)


 



크기와 양을 가늠해 보기 위해 상 위의 소주병과 비교해 봤다. 접시 한 곳에 담겨진 양은 4인분. 이 집에서는 방어회를 주문하는 정도에 따라 가격이 차별화 되고 있었다. 차림표를 살펴보니 2인분(부터 주문)에 5만원 하던 방어회는 3인분 이상을 주문할 때부터 1인분 당 5천원이 줄어든다. 예컨데 3인분은 6만원, 4인분은 8만원이었다. 잘 숙성된 방어회 1인분을 2만원에 먹을 수 있는 것. 가격 대비 눈 앞에 놓인 제주산 방어회 양은 엄청났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제주산 한라산 소주...흔히 맛 볼 수 없는 물 좋은 제주 한림읍에서 생산되는 (희석식)소주다. 고구마 주정에 약 78%의 물을 섞고 올리고당과 아스파라긴산을 첨가하여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시장의 약 92%를 점유하고 있는 한라산 소주는 제주의 대표선수이자 명물. 미국과 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있는 술이란다. 한라산 소주의 연혁은 1950년부터라고 하므로 어느덧 63년 째를 맞이하고 있는 것. 태극기가 그려진 브랜드 라벨이 독특했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한라산 소주...


 



그런데 소주를 주문해 놓고 반주 삼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식탁에는 상추와 깻잎 된장과 마늘 조각외 초고추장과 고추냉이(와사비) 밖에 안 보였다. 횟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끼다시('곁가지 음식'이라 부른다)'가 나오지 않았다. 방어회가 큰 접시에 담겨 나올때까지 기다려 봤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회양과 국수군 횟집의 노하우가 여기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세 번 망하고 터득한 방어 횟집
 

 



하루종일 우도 투어에 나섰던 일행 앞에 놓여진 방어회가 사라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않았다. 촐촐함이 방어회 맛을 더욱 달콤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도톰하고 크게 썰어진 횟감은 입안 가득 쫀뜩쫀득 씹히는 식감이 매우 뛰어났다. 살결이 달콤했다. 필자의 경우 횟감은 주로 고추냉이+간장에 찍어 먹는다. 상추와 깻잎을 방어회에 싸 먹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다. 횟감이 가진 본연의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횟감을 싸 먹지 않는 것. 
 

 



방어회 한 점을 젖가락에 집어서 고추냉이를 찍어서 천천히 씹어보니 쫀득쫀득...그래서 이 집 쥔장을 불러서 방어회 숙성시간을 물어봤다. 방어는 잡아서 바로 회를 떠 먹는 것 보다 찬곳에서 대략 10시간 정도는 숙성시간을 보내야 제 맛이 난다. 잠시 후 이 집 주인장이자 요리사인 김 씨가 후덕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김 씨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제주산 방어회는 바쁜 나머지 냉장고에서 4시간 밖에 숙성이 안 된 것이라 일러주었다. 솔직했다. 음식점이 청결하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필자가 김 씨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건, 회가 나오기 전에 '왜 곁가지 음식 한 조각도 안 나오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하 그거요. 세 번 망해서 터득한 비결입니다. ^^ " 

그는 손님들이 횟집에서 습관처럼 찾는 곁가지 음식을 내 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꽤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른바 '스끼다시' 때문에 세 번 망하게 된 것이다. 곁가지 음식 때문에 세 번 망하다니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우도에서 회양과 국수군을 성업중에 운영하고 있는 김 씨는 전직 수해양계학교 출신의 기관사였다. 그런 그가 외항선을 타고 모은 돈 모두를 제주시에서 호프집을 열었다가 IMF 때 모두 날려버린 것. 그 때 힘들 게 번 5천 만원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고생만 죽도록 했다. 첫 번째 망한 사실은 대략 그랬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횟집에서 크게 실패했다. 이번에는 두 번에 걸쳐 1억 5천 만원을 다시 날려버린 것이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암담했다고 한다. 그나마 두 세 번의 사업은 사채를 쓴 것이어서 이자 부담이 컷다. 이대로 가다간 가족들 전부가 쪽박을 차겠다는 생각에 하는 수 없이 다시 외항선에 몸을 실었다. 김 씨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눈이 반짝거렸다. 눈물이 살짝 맺힌 것(울컥). 그리고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집에 오신 분들이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왜 곁가지 음식이 없느냐고요. 그건 손님들이 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저희가 망한 이유가 그 때문인데 그걸 다시 하겠어요. 혼자 주방장이 되어 작은 가게(식당)을 운영하며 곁가지 음식과 회를 내 놓자면 손님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일손도 많아지지요. 손님이 올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손님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짜증을 내게 마련입니다. 매상은 안 오르고요.

그런 손님들은 다음부터 안 와요. 혼자서 주방 일을 하니 공정이 많이지고 길어지니 하루에 몇 테이블이나 받겠어요. 곁가지 음식 종류가 한 두가지 아니잖아요. 그 때는 몰랐지만 세 번 망한 후에 곰곰히 생각해 보니 망한 이유가 빤히 보이더군요. 자본금이 많고 큰 음식점이 아니라면 조리방법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지요."


 



곁가지 음식이 안 보인 이유를 단박에 알았다. 그 대신 가격을 착하고 하고 양을 푸짐하게 하는 한편 서비스 시간을 매우 빠르게 단축 시킨 것. 김 씨가 재기에 성공한 노하우였다.그때부터 5년간 김 씨는 외항선을 타고 아내(고양희 씨)는 남의 식당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김 씨는 IMF를 그렇게 바다 위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 한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여보...나...식당 차리고 싶어...(간절하게)"
 


 



김 씨는 단박에 화부터 냈다.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다는 말인가. 김씨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세 번씩이나 말아먹고 또 식당하고 싶어? 하지마!..."라고 버럭 화를 냈다는 것. 그러나 김 씨의 아내는 완강했다. 결국 두 부부는 제주시에서 고향인 우도로 돌아와 다시 마련한 밑천으로 말 그대로 콧구멍만한 가게를 시작하게 됐다. 그게 IMF를 극복한 오늘날의 <회양과 국수군>이라는 맛집인 것. 간판 이름도 독특했는데 가게를 다시 낼 때 간판 이름을 고민하던 중에 아들래미가 작명한 간판. 회와 국수를 의인화 한 것이다.
 



 



위 그림 처럼 도톰하게 썰어진 회와 국수 위에 초고추장을 뿌리고 손으로 주물럭거려 비벼대니 침이 절로 넘어가는 것. 회와 국수의 절묘한 만남도 세 번 망한 후에 손님들의 식습관을 잘 관찰한 끝에 만들어진 노하우. 만약 그가 세 번 망한 뼈아픈 경험이 없었드라면 오늘날 우도에서 회국수(1인분 8천원)를 맛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세 번 망한 후 터득한 노후우는 처음과 너무도 달라져있었다.
 

 



"장사요?...아무나 함부로 달라들면 큰일나요. 식당을 열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경제성과 시장성 등을 꼼꼼히 잘 살펴봐야 합니다. 남들 사업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쉽지않습니다. 남들 다 하는 거 그냥 따라하면 망하기 십상이죠. 하하...남들 안 하는 거 남들과 차별화된 음식의 연구개발이 중요합니다. 늘 하던 방식으로 고집하면 어느날 망해요. 하하 "
 

 



김 씨는 자기의 뼈아픈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 가려진 고통은 얼마나 깊었을까. 그가 세 번 망하고 터득한 좌우명은 "실패를 모르면 도전하지 말라"라는 교훈. 세 번 실패 후 다시 도전해 성공한 비결이 곁가지 음식을 버린 방어회와 보기만 해도 침이 잴잴 고이는 회국수 속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이다.
 

 



회국수는 조물조물 주물주물 비벼지면서 탱글탱글한 면발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처럼 회국수는 다 비벼진 직후 그야말로 폭풍 흡입!!...방어회로 불러진 배가 회국수로 다시 채워진 것. 새콤달콤 쫄깃쫄깃...이런 일 처음이었다. 늦은 시각 과식을 부르는 비쥬얼...ㅜㅜ
 

 



그리고 회양과 국수군에서 제공되는 곁가지 음식 하나. 방어회를 뜨고 남은 살을 발라 튀김으로 만든 것. 물론 방어튀김 조차 순식간에 사라졌다.이런 일 처음이었다. 먹고 또 먹고...그리고 연이어 나타난 방어대가리 구이. 
 

 



두 손 들었다. 만약 방어회를 주문하고 곁가지 음식을 먹었다면 그냥 바라만 봐야 했을 것.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큰지 스마트폰과 비교해 봤더니 이런 모습!...이 때 시간이 저녁 8시 19분.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후 이 모든 것을 흡입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방어대가리 구이는 비린맛도 없고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어두일미가 이런 맛...


 



방어 눈알을 쏙 빼 먹고 다시 한 번 더 인증샷!...웬만한 가다랑어 눈알 정도의 크기다.  


 



그리고 배터지게 만든 마지막 코스...방어매운탕에 밥 한 술까지 더했으니 식신이 울고 갈 정도 아니겠는가.


 




 



결국 매운탕까지 바닥 내고난 다음 회양과 국수군의 진가를 알게 됐다. 세 번 망하고 터득한 비법 전부가 녹아든 방어 횟집이었던 것.


 

 



후덕한 모습의 바로 이 사람...세 번 망해본 쓰라린 경험의 소유자 김법진 씨. 그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남은 빚을 거의 다 갚고 이젠 번 돈 대부분을 은행에 꼬박 저축한다고 했다. 세 번 망한 후에 고향 우도가 다시 당신을 품어주고 있었던 것일까. 김 씨는 제주시 우도면의 부면장이기도 했다. 사업으로 바쁜 중에도 우도면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 
 

 

 



우도의 서빈백사 해변에서 올려다 본 회양과 국수군의 소박한 전경. 그 속은 더 소박했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도란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인가 다시 우도를 찾게 되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얼굴이자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맛집이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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