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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1박2일 팀이 빠뜨린 수원화성의 백미


Daum 블로거뉴스
 


1박2일 팀이 빠뜨린 수원화성의 백미
-수원의 새로운 명소 '노을빛전망대' 눈여겨 봤어야-



카메라의 슈팅 수는 감동의 크기와 깊이에 비례하는 것일까.

지난해 가을 수원 화성에 파워블로거 자격으로 1박 2일 동안 소셜팸투어를 다녀 오면서 꽤 많은 사진을 촬영했다. 꽤 많은 분량이란 점잖은 표현. 투어가 끝난 후 테마별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거의 1,000컷 남짓이었다.1박 2일 동안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기는 생전 처음이다. 거의 미친 슈팅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촬영된 사진들이 적지않지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량의 셔터가 작렬했기 때문에 카메라도 놀랐을 것.

긴 여행을 통해 체득된 경험에 따르면 (여행사진은) 카메라의 슈팅 수는 감동에 비례했다. 최근 대략 10개월의 긴 여정동안 다녀온 빠따고니아 투어 때도 그랬다.어떤 날은 겨우 댓 장을 찍었고 또 어떤 날은 수백컷의 풍경사진과 기록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그 사진들은 어느 순간 필자를 감동 시키기에 충분했던 것들이었다. 테마가 있는 사진들이며, 아름다운 풍광과 풍물이 깃든 사진들이었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피사체가 감동을 줄 형편(?)이 못되거나 촬영자가 마음을 닫고 피사체를 바라보면 심드렁해 지기도 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가 자기의 마음에 들고 가끔씩 들여다 보며 추억을 반추할 만한 것들이라면 한 곳에서 꽤 오랜동안 피사체와 교감을 나누게 될 것. 따라서 셔터를 누르게 되는 수(슈팅)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여행지의 감동의 크기와 깊이에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나 할까. 수원의 상징 조형물인 서부공심돈의 사진한 장을 앞에 두고 카메라 슈팅 수를 언급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지난주에 걸쳐 이틀 동안 방영된 KBS-2TV의 인기 프로그램 <1박 2일 수원편>을 시청하면서 나름의 관전평을 끼적이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1박 2일의 수원(화성)편은, 다큐 프로그램이 아니라 연예.오락 프로그램이어서 그런지 수원화성의 아름다움 다수를 빠뜨린 것 같았다. 제한된 시간과 장소 등을 통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려 하다보니 제작진 또한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지난해 가을 소셜팸투어를 통해 수원 화성을 1박 2일 동안 돌아보면서 수원 화성만 즐기는데 하루만으로 부족해 보였다.



**수원화성에 가면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 정조임금의 얼이 깃든 수원화성의 서장대(화성장대라고도 부른다)이다.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 눈에 (내려다)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임금의 친필이다.

1794년(정조19년) 8월 11일 터 닦기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하였다. 정조는 1795년 윤 2월 12일 현룡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지난 가을 그 역사적인 서장대 앞에서 당신의 후손들이 쪼구리고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다음뷰 주관 쇼셜팸투어에 나선 파워블로거들과 수원시 관계자 등. 
 


 
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화성행궁
 
 



필자는 투어에 나선 일행들과 늘 뒤쳐졌는데 정조임금과 우리 선조님들의 얼이 깃든 화성을 걷다보니 어느덧 몰입이 되어 걸음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일정상 우선 테마별로 촬영을 해 두고 포스팅을 통해 즐거움을 공유하며 느끼고 싶었다. 글쎄 그렇게 촬영된 사진이 1,000컷 남짓이라니 필자가 미쳤던지, 아니면 화성의 아름다움이 극치에 이르렀던지 둘 중 하나였을 것. 후자가 정답이라야. ㅋ
 
수원 화성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었고 필자는 짧은 시간동안 작품 속에 푹 빠져 헤어날 줄 몰랐던 것. 1박 2일의 투어를 마치고 귀가한 후 열심히 포스팅을 시도하던 중 손을 놓고 말았다. 시의성도 상실하고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뀐 후 어느날, 리얼 버라이어티 KBS-2TV 1박 2일 수원편이 방영되고 있었던 것. 눈이 번쩍 띄었다.

 

 

그동안 촬영된 사진들이 빛을 볼 수 있는 타이밍이자, 1박 2일 제작팀은 프로그램 타이틀을 <등잔 밑이 어둡다>라고 지었다. 기발한 타이틀이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놀려주기라도 할 만한 타이틀. 엎어지면 코 앞에 맞딱뜨릴 멋진 여행지를 두고 그동안 어디를 다녔단 말인가.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그냥 지정된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를 너머 세계인들이 지키고 가꾸며 후손에게 물려줘야 마땅한 건축물 등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남아있는 곳이 수원화성이었다. 어느곳을 건드리거나 바라봐도 금방 이야기 보따리가 와르르 쏟아지는 200여 년 전 '아날로그앱'이라고나 할까. 그 방대한 분량을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소화할 수 있기는 턱 없이 부족한 데도, 사람들은 그동안 어디를 다녔는지. 

 
등잔 밑이 정말 어두웠다. 그래서  KBS-2TV 1박 2일 팀이 첫 돌을 맞이한 것도 축하할 겸, 1박 2일 팀도 빼 먹거나 빠뜨린(?) 몇 곳을 큼직한 테마로 엮어 사진으로 준비해 봤다.(사진 대방출) 예전 같으면 꿈또 꾸지못할 대용량의 사진들이 1박 2일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대변해 주었으면 좋겠다.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20년(1796)에 수원성을 쌓은 뒤 팔달산 동쪽기슭에 세운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으로 수원성의 원래 이름이 화성이었으므로 화성행궁이라고 부른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능인 화산릉에 참배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서 쉬어갔다고 한다. 행궁에는 정전인 봉수당을 비롯하여 경룡관·복내당 등의 전각, 문루 등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다. 

일제시대에 건물을 헐어내어 현재는 낙남헌만이 남아있고 1994년부터 복원사업을 진행하였다. 낙남헌은 봉수당 북쪽에 있던 ㄱ자 건물인데 지금은 꺾인 부분이 잘리어 없어지고 一자형의 건물로 바뀌었다. 기단은 기둥돌과 장대석을 사용하여 틀을 만들고 내부에 벽돌을 채워넣은 특이한 형식인데, 화성 동북쪽에 있는 방화수류정에서도 이와 같은 양식을 볼 수 있다.

1박 2일 수원편에서 복불복에서 패한 
이수근, 성시경, 차태현은 이곳 행궁 앞 공터에서 비닐천막을 치고 야외 취침을 했다. (멤버 중 차태현은 부시시한 얼굴로 팬들 보기에 창피하단다. ㅋ 창피하다고?...정조임금 당시 같으면 꿈도 못 꿀 일. 영광인줄 아세요.ㅋㅋ) 



 

멀리 장안문(수원화성 정문)이 보인다. 정조임금은 수원행차시 저곳을 통과해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성 내부와 외곽의 모습이 이채롭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성벽 주변으로는 개발제한 구역이다.


 


서북공심돈-장안문까지, 수원화성의 백미



 




서장대에서 서포루와 서북각루로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내려오면 화서문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특이한 모양의 반달형 옹성을 무주치게 된다.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특이한 건축물이며 곁에 서 있는 서북공심돈은 수원을 상징하는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이다.

화서문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성문으로 정조 20년(1796)에 지어진 수원 화성의 사대문 중 서쪽 문이다.   돌로 쌓은 무지개문 위에 단층의 다락집(문루)을 올렸고, 낮게 쌓은 담으로 사방을 둘렀다. 남쪽문인 팔달문이나 북쪽문인 장안문과는 다르게 문의 전면에 한쪽이 열려있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화서문 옆에는 전쟁시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 역할을 하는 서북공심돈을 배치했는데, 이렇게 망루 안의 중앙 공간을 비워서 축조한 것은 우리나라 성곽 중 수원화성이 처음이다.







서북공심돈 현재 수원의 상징 건축물. 화성의 화서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정조 20년(1796)에 건립되었다. 수원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측 성벽에서 돌출시켜 남측면의 일부만 성곽에 접하고 나머지 3면이 돌출된 평면을 이루고 있다. 3층 구조로 하부 치성(雉城)은 방형의 석재를 사용하였고 1층과 2층 외벽과 3층 하부는 전돌로 쌓았다. 1, 2층 각 면에는 6개의 총안(銃眼)이 있으며, 3층에는 여장(女墻)을 쌓고 같은 높이에 4개의 총안을 내었다.

3층 포루(鋪樓)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벽면 위쪽의 판문에는 전안(箭眼)이 설치되어 있다. 치성의 북측면과 서측면에는 각 2개소의 현안(懸眼)을 두어 성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고, 하부는 성벽의 석재를 오목하게 “∪”자형으로 가공하여 상부 전돌 현안과 연결되게 하였다. 수원 서북공심돈의 성제(城制)는 현존 성곽 건축에서는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재료의 유연성과 기능성이 우수하며, 치성의 석재 쌓기 기법과 상부 공심돈의 전돌 축조 기법, 현안과 총안, 전안 등의 중요한 시설 등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화서문을 나서면 좌측 억새밭을 돌아보라




만약 수원화성을 투어 중에 화서문을 나서게 되면 좌측으로 이어진 억새밭을 돌아보시라. 연인들 끼리 가면 '영원한 짝'을 이룰지 모른다. 분위기 있다는 뜻. ^^
 



















화서문에서-장안문까지 이어지는 성벽을 눈여겨 보라
 -
선조님들의 숨결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역사의 현장-




주지하다시피 수원화성의 축조에는 실학자 정약용 선생이 직접 고안한 거중기가 동원된 건 유명하다. 거중기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올리는 장치이다. 이 거중기는 정조 때인 1796년 정약용이 수원성을 쌓는 사업을 지휘하면서 수원 성곽에 쌓는 작업에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정약용은 거중기를 만들 때, 서양의 여러가지 기계에 대하여 해설한 책인 '기기도설'을 참고로 연구하여 만들었다. 이 책은 1672년에 중국 기독교 포교활동을 위해 중국에 있던 스위스 선교사 J.테렌츠가 쓴 책이다. 그러나 그 어떤 건축물이 이루어지는 공사장이든 사람들의 손길이 안 가는 곳이 없다. 서북 공심돈에서 장안문까지 이어지는 성벽 아래를 걷다보면 당시 공사에 동원된 선조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수원화성의 명물이 된 꼬마기차







북포루의 모습. 포루가 아니라 어느 성주의 저택같이 아름답다. 이곳에서 보면 성벽을 오르는 좌우의 적들은 파리 목숨일 듯.




성벽은 시간이 흐르면서 증개축 됐다.




오래된 본래의 석축은 잉카(마츄피츄)의 거석문화가 안 부러운 듯 정교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그리고 무서운 무기 하나...




성벽에 접근한 적군이 이곳에 도달하면 펄펄 끓는 물 세례를 받는다. 성벽 곳곳에 이런 구멍이 나 있다.




성벽 곳곳에는 6.25 전쟁 때 입은 탄흔이 남아있다.




성벽의 굴곡이 진 부분에는 돌을 'ㄱ자'로 다듬어 쌓았다.




장안문 밖에서 본 기울어진 성벽이 특이하다.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만든 건축술이다. 또 벽돌로 쌓은 성벽은 포탄이 뚫지 못하고 성벽 안쪽으로는 흙이 채워져 있는 구조다. 그러나 눈여겨 볼 것은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남문의 아름다운 건축미. 겹겹이 방어벽으로 쌓인 장안문은 국내에서 제일 큰 성문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닌가 싶다.






















장안문은 성지와 다름없었다. 빌고 또 빌기를 하늘에 닿을 때까지...백성들이 소원을 빈 장소가 움푹 패였다. e-수원뉴스 김우영 주간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장안문을 오르는 특이한 계단. 보통계단 높이의 두 배는 족히 넘는다. 왜그랬을까...성문을 방어하는 등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진 조치. 한 번에 세 계단씩 올라가는 셈이다.
 
















장안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정조임금은 이 길을 통해 수원화성에 입성했다.




얼굴을 가린 게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장안문을...
















수원 화성에 얽힌 역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언급하자면 1박 2일의 시간으로는 턱도 없다. 그래서 통째로 뛰어 넘었다. 그 대신 수원성에 대한 자료 하나만 더 첨부하고 1박 2일 팀이 빠뜨린 수원화성의 백미를 살펴보도록 한다.
 



수원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성곽이다. 중국성의 모습을 본뜨기는 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을 쌓아 훨씬 발달한 모습을 하며,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이다. 화서문은 수원성의 서쪽문으로 문의 모든 시설과 크기는 동쪽의 창룡문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네모 반듯한 큰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축대 위에 1층의 건물을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건물이고, 축대의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과 문의 앞쪽에 벽돌로 쌓은 반달모양의 옹성이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구실을 하며 2중의 방어 효과를 갖는다. 또한 주위를 돌아가며 총이나 활을 쏘는 구멍이 뚫린 낮은 담을 쌓아 보호되도록 하였다. 옹성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공심돈이 성벽을 따라서 연결되어 있다.

공심돈은 속이 텅 비었다는 뜻으로 지금의 초소 구실을 하던 곳이다. 안에는 계단을 따라 오르내릴 수 있고 층마다 바깥을 향해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구멍이 있어 철저한 방어가 되도록 하였다. 한국의 다른 성곽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설로서, 구조도 특이하며 화서문을 중심으로 일대의 경치에 한층 더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1박 2일 팀이 빠뜨린 수원의 새로운 명소




수원 화성에 어둠이 내리면 빛나는 게 있다. 이곳의 위치는 서장대에서 보면 동쪽에 위치한 창룡문 곁에 있는 봉돈이라는 곳이다. 봉돈(烽墩,봉화대)은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던 통신시설이다. 요즘 같으면 봉돈의 벽돌 한 장 보다 더 얇은 스마트폰 등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작은 물건은 이렇듯 중후한 맛은 못 낼 것. 수원 화성의 동이치와 동이포루 사이에 있는 봉돈이 밤이면 빛을 발한다는 게 아니다.




봉돈을 지척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 동네 이름은 벽화마을로 유명해진 '지동'이다.




연식이 꽤 오래되어 보이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멀리 팔달산의 서장대 뒤로 해가 떨어지면 '지동의 명물'이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





수원화성 곁 지동의 명물 노을빛전망대




수원 화성의 봉돈 곁에는 지동 벽화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노을빛 전망대'도 함께있다. 노을빛전망대는 건축양식이 독특하다. 겉모습만 참조하면 이곳이 성당인 줄 착각하게 될 정도. 중세 고딕양식으로 건축한 이 교회 이름은 팔달구 지동에 위치한 '수원제일교회(담임목사 이규왕)'이다. 이 교회 종탑(?)에 전망대가 시설되어 있는 것.


흠...놀라셨나요. 이 분은 문화재 답사 전문가 블로거 온누리님(하주성). 1박 2일 수원편의 산파.


하루 종일 수원화성 투어에 나섰다가 초죽음(?)이 된 일행이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곳이자, 수원과 화성의 전망이 한 눈에 조망되는 곳이었다. 이 교회는 60년된 교회로 1953년에 천막교회로부터 시작된 이후 지역사회에 큰 신뢰를 얻고 있는 곳이었다. 수원이 한 눈에 조망되는 전망대를 시민들을 위해 선뜻 내 준 것만 봐도, 이 교회의 리더격인 장로와 목사와 신자들이 남다르다는 것.




전망대 개방은 장로회의를 거쳐 투표한 결과 98%가 찬성을 했다고 한다. 참 보기드문 훈훈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수원시가 내 건 케치프레이즈는 "사람이 반갑습니다"였다. 사람을 중시하고 사람을 만나는 게 반가운 일상이 사람사는 세상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웃에게 좋은 장소를 개방하여 수원을 알리는 건 물론 교회를 알리는 건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이자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 참 잘한 결정 같았다.

정말 기분좋은 일은 이 전망대를 오르면서부터다. 70m 높이의 노을빛전망대에 오르는 코스는 좁은 공간의 종탑 속에 한 사람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화려한 달팽이형(나선형) 계단이다.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다 보면 어질어질한 느낌이 단박에 든다. 그리고 노을빛전망대에 서면 한 낮에 돌아봤던 수원 화성이 오렌지빛 불빛을 머금고 눈 앞에 나타난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감이 넘치는 곳이다.

또 그 흔한 도시의 빌딩에서 내뿜는 불빛이 아니라 겸손한 듯 납짝 엎드린 불빛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 그 곳에 가면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 교회의 종탑 끄트머리 노을빛전망대에서 소원처럼 이루어질 것. 그런데 1박 2일 팀이 이곳을 빼 먹다니...ㅜㅜ (...자동으로 종아리 걷으시지요.^^ )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 노을빛전망대로 가 본다.


노을빛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이런 것일까. 컬러풀한 빛깔의 계단과 조명이 인상적이다.














노을빛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의 야경





삼각대 없이 찍어본 수원화성의 야경...












































서두에 카메라의 슈팅 수는 감동의 크기와 깊이에 비례할 것인지 자문해 봤다. 셔터가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무시로 작렬한 것 같지만 돌이켜 보면 수원화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사진으로 손색이 없다. 좀 더 준비해 수원의 착한 야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으면 삼각대와 렌즈를 추가로 지참하는 등, 준비를 하는 게 바람직할 정도로 노을빛전망대의 풍경은 남달랐다.

이 포스트에 동원된 이미지 파일만도 90개 정도. 여태껏 블로깅을 해 오면서 이렇게 많은 이미지를 동원한 건 처음있는 일이다. 수원 화성의 매력에 반하고 정조임금님이 그랬던 것처럼, 애민정신이 깃든 수원의 케치프레이즈(휴먼시티)에 따라 격없이 대해준 염태영 수원시장 포함 수원시 관계자분들의 따뜻한 배려 때문이다. 또 심심할 때 언제든지 다시 꺼내봐도 정겨운 곳이 수원화성이었다.

자랑은 많이 떠들어서 될 일이 아니다. 그저 말 수를 줄이고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큰 자랑거리가 된다. 그게 수원의 자랑이자 정조임금의 얼이 깃든 수원화성의 지독한 매력이자 마력이다. 수원은 사람을 그리워 하는 도시이자, 사람들이 그리워 하는 도시이다. 1박 2일로 결코 다 돌아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KBS-2TV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 1박 2일이 반쪽으로 변했겠지. ^^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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