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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

너무 일찍 드러난 아들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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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드러난 아들의 굴욕
-by the 며느리  for the 며느리 of the 며느리의 결과?-


요즘 엄마들 한테 아들은 어떤 존재일까...

이곳은 고도 백제의 고미나루 전설을 고이 간직한 
충남 공주시 금강의 고미(곰)나루 솔 숲 곰사당 근처 공주한옥마을 앞 썰매장이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열심히 썰매를 타고 있는 모습인데
요즘은 참 보기 드문 광경이다.

뒤로 보이는 연미산에 곰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보기드물게 솔 숲에는 토테미즘의 상징인 곰사당이 모셔져 있다. 공주는 곰(곰 웅熊)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고, 본래 웅천(熊川)으로 불리웠기 때문에 오늘날 금강 근처에는 곰들이 많이 서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미산은 그 중 한 곳인데 백제가 공주로 도읍을 옮긴 뒤에는 웅진熊津이라 하였고, 백제가 망한 뒤에는 당나라에서 이곳에 웅진도독부를 두기도 했던 것이다. 신라가 당을 몰아낸 후에는 웅천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웅주라고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 공주로 고쳤다.


평소 군비를 게을리하였던 백제 개로왕이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475년 9월 한성(漢城:서울)을 공격한 고구려 장수왕 한테 피살되자, 그의 아들 문주왕은 즉위 후 곧 도읍을 웅진으로 옮겼다. 성왕이 다시 도읍을 소부리(所夫里:부여)로 옮길 때까지 웅진은 그후 백제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이 왕성인 부여를 버리고 이곳에 있다가 마침내 패망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웅진이라는 이름은 금강가에 있는 나루터인 '고마나루(곰나루)' 즉, 곰 웅(熊), 나루 진(津)의 뜻을 취한 것으로 '구마나리'. '고미나루' 등의 어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두 주 전 유서깊은 고미나루 곁 공주한옥마을 앞 썰매장에서 요즘 참 보기 드문 광경을 보면서 즐거워 하며 썰매타기 체험에 나선 젊은 부부의 동의를 얻어 아름다운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엄마들의 심리 일면을 엿 볼 수 있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어 이 포스트를 끄적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공주시의 전설과 설화를 곁들여 여러분들께 '아들의 굴욕'적인 장면(?)과 함께 소개해 드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고미나루의 전설로 마무리 할 작정이다. 그렇다면 아들의 굴욕을 잉태한 엄마의 심리를 잠시 엿보기로 할까. ^^


우리는 모두 엄마 뱃속에서 약 10개월간의 세월동안
세상 모든 걱정 근심 다 하지 않고 살다가 세상에 태어났다.

또 이 땅의 자손들은 그냥 태어난 게 아니라
 좀 더 거창한 자긍심으로 포장하면 이렇다.

천제 환인의 아들, 즉 단군의 자손인 우리는 단웅(檀雄) 또는 신웅(神雄)이라고도 불리우는 환웅(桓雄)을 시조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환웅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지기 전에 하늘에서 내려와 신시를 세우고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는 모습이 환웅 및 단군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환웅은 환인의 서자庶子는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인간 세상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환인은 아들의 뜻을 알고 환웅에게 천부인 3개를 주고 인간 세상에 내려가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렸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 동굴에서 함께 살던 곰과 호랑이가 항상 사람이 되고 싶다고 환웅에게 빌었고, 환웅은 쑥과 마늘을 내려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하였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으며, 곰은 환웅이 시킨대로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동굴 속에서 삼칠일(三七日: 21일) 동안 수도한 끝에 여자가 되었다. 웅녀熊女는 아이를 낳고자 하였으나 아무도 결혼해주지 않자 다시 환웅에게 빌었고, 환웅은 사람으로 변신하여 웅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이가 오늘날 우리 시조로 불리우는 단군왕검이라고 한다.

 
평소 어른들로 부터 전해듣던 웅녀와 단군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중학교 역사시간에 단군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선생님으로부터 전해들으면서 마치 꿈을 꾸는듯 했다. 마치 반만년 이상의 긴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장면을 또렷이 보는듯 했다. 내게 있어서 곰은 그런 존재였고 어미같은 존재였다. 요즘 과학적 잣대로 보면 유전자 등 무엇하나 곰과 관련이 없는듯 싶지만 세상의 전설이나 신화를 과학적 잣대로만 견주어야 옳을까. 고미나루 곁에서 썰매를 타고 있는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 모습을 보니 연미산에서 내려온 곰 가족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듯 싶기도 했다. 참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우리 전설과 설화 속에서 곰이 여인이 된 것 처럼 여인은 또 아이를 몸 속에 잘 품고 있다가 세상에 내 보낸 이후 일가를 이루게 하고 사회를 만들며 또 나라를 만드는 등 세상 모든 것을 이루게 하는 풍요의 여신 이상이었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단군 이래 최소한 반만년의 역사를 지내오는 동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껏 힘들게 낳아 놓은 아들들이 엄마를 배신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 것이다. ^^ 엄마는 시집가면 남의 식구가 돼 버린 딸과 달리 장차 자신을 돌봐줄 아들이라고 애지중지 길렀건만, 이상하게도 그 아들들은 결혼만 하면 아내 밖에 모르는 배신남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흠...기껏 품고 길러 놨더니...지 마누라 밖에 모르다니...나뿐넘...아흑...ㅜㅜ)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인간 여자가 된 이래 단군을 낳아 자손을 번성하기 까지 최고의 대접을 받아도 시원찮을 이 땅의 엄마가 최악의 대접을 받는 일이 거듭되는 동안 웅녀의 후손들 DNA 속에는 복수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선조 어머니들은 우선 며느리를 족치며 앙갚음을 하는 등 시집살이를 시켰지만 그 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대의 똑똑해진 여성들이 민주화를 부르짖고 여권신장을 부르짖으며 '고부간의 갈등' 원인이 지나친 시어머니의 권위의식 때문 등이라고 소리높여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며느리를 맞이한 선조 웅녀들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따로 분가 시키는 게 신상에 더 낫다라는 판단을 하게 이른 것이다. 그러나 웅녀의 한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들 넘 기껏 키워봤자 헛일 이라는 판단이 시도 때도 없이 본능을 자극하며 아들에 대한 미움을 싹트게 만들었던지 틈만 나면 아들 넘 부려먹을 생각을 한 것 같다. 장가가면 내 새끼가 아니고 내 아들이 아니라, by the 며느리  for the 며느리 of the 며느리...등등에 의한 며느리만을 위한 식민(?)이 시작될 걸 생각하면 장가 보내기 전에 한시라도 더 부려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어느날 불쑥 나와 버리고만 것 같다.


"흠...아들...니가 끌어봐...더...더더...힘껏...옳지...ㅋ 앞으로 나쁠 넘...ㅋㅋ...요걸 몰랐징...^^)   

아들이 썰매를 끌고 있는 장면 뒤 솔 숲으로 곰사당이 보인다. 저 곰사당 너머로 고미나루가 있는데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옛날 이곳에 살던 한 사내가 하루는 인근에 있는 연미산에 놀러 갔다가 길을 잃고 배가 고파서 바위 굴 속에 쉬고 있던 중 한 처녀를 만났다. 사내는 처녀와 굴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부부의 연을 맺고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매일 굴을 나갔다가 음식을 가져오는 처녀의 정체가 의심스러워 뒤를 쫓아가 보니 처녀가 곰으로 변하여 사슴을 잡는 것이 아닌가. 그후 처녀는 사내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것을 알고 사내를 바위 굴 속에 가두어 놓았으며 사내는 암콤과 사는 동안 자식까지 둘을 낳았다.


어느 날 암콤이 바위로 굴을 막지 않고 나간 틈에 사내는 도망을 나와 금강을 헤엄쳐 건넜다. 뒤늦게 이를 알고 쫓아 나온 암콤이 멀리서 자식을 들어 보이며 마음을 돌리도록 호소하였지만 이 사내는 매정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이에 암콤은 어린 자식들을 안고 금강에 뛰 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는데, 그후부터 금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풍랑에 뒤집히는 일이 많아 나루옆에 사당을 짓고 곰의 넋을 위로했다고 전한다. 곰내.웅진 또는 곰나루,고미나루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며, 1972년 이 나루에서 돌로 새긴 곰상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곰사당인 웅신당(熊神堂)을 지어 모시고 있다.

흠...천제 환웅으로 부터 웅진의 웅녀 까지 우리 신화와 전설 속의 여인들은 뒤도 안 돌아보는 남자들에 의한 원초적 불행과 한을 안고 살았던 것일까. 결혼만 하면 고부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편을 꽉 붙들어 놓는 한편 아들 까지 철저히 부려 먹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ㅋ 그러고 보니 아들 낳으면 뱅기 못 타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 저 날 따라 유난히도 그런 아들의 모습이 굴욕적인 게 아닌가. 아무렴 엄마가 아들에게 그런 생각으로 썰매를 끌게 했겠나만, 금강 곁 연미산과 고미나루와 곰사당을 동시에 보면서 든 곰에 얽힌 전설과 설화를 떠 올리면서 본 풍경이 그랬다. ^^*

** 다음 포스트는 뒤로 보이는 공주의 전설과 설화가 깃든 곰사당의 아름다운 솔 숲을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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