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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촛불 때문에 검찰 조사받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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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때문에 검찰 조사받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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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그림은 봉은사(주지, 명진 스님)의 4월 초파일 맞이 모습입니다.

촛불 망령들이 되살아 나고 있었던 것일까?...2년전 프레스 센터 앞에는 빗방울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촛불시민들은 프레스센터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 시각 태평로를 가로막고 있던 작은 명박산성은 뒤뚱뒤뚱 흔들리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전경버스에 밧줄을 묶어 이리 당기고 저리 당기고 있었다. 전경버스 너머에서는 간헐적으로 물대포가 쉭 하며 물을 뿜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비에 젖은 사람들은 물대포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자 "찍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때 프레스센터 근처에서 누구인가 소방호스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소화전을 열어 호스를 연결한 후 경찰의 물대포에 맞섰다. 그러나 그게 촛불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전경버스 뒤에서 촛불시민 등을 해산하려는 무장경찰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평로에 있던 시민들은 모두 시청앞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경찰의 손에는 묵직한 방망이와 함께 방패가 들려있었는데 미처 도망가지 못한 시민들과 도망가다가 넘어진 시민 위로 방망이질이 시작되었다. 이 광경을 프레스센터 인도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촛불시민들은 경악하며 "어떻게" 또는 " 이 나쁜놈들아"와 같은 소리를 마구 질렀지만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어떤 시민들은 이 광경을 보며 울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 역시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광경을 향해 뷰파인더를 들이밀었지만 카메라를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 노래 소리를 들으며 반성하며 사과하고 난 직후 였다. 난 그때 부터 지인들과 만나면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입밖에도 끄집어 내지 않았다. 그 대신 차마 입이 더러워질 수사 하나를 입에 달고 여태껏 살고 있는데, 2010년 3월 어느날 지하철로 볼 일을 보러 가던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촛불(가명으로 하자)이세요?"
"...네, 촛불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세효?"
"아,저는 서울 지검 공안검사 케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요?...무슨 볼 일이라도?..."
"아,다름이 아니라 민주당 에이의원 사건 때문에..."
"...무슨 사건이지요?"
"국회의원이 경찰을 폭행한 사건인데요. 증인..."
"고소인은 누군데요?..."
"...경찰요."
"폭행을 한 경찰이 국회의원을 오히려 고소해요? 나쁜놈들 같으니라구..."
"...암튼 3월 22일 오후 2시 까지..."
"어디라구요?...서울지검 9층에 있는...네, 잘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안사람과 나직히 속삭였다.

"흠...별 미친X들 다 보겠네!..."
"...먼데?..."
"응...민주당 에이의원 사건 말이다. 증언하겠다고 했던...폭행한 경찰이 고소했데. 가 보기나 하지머."

촛불이 한참 활활 타 오를 때 나는 거의 매일 촛불을 뒤따라 다니며 취재랍시고 하루를 소일했다. 새까만 후배들과 밤을 새는 일은 예사였고, 집으로 돌아오면 사진을 편집하여 블로깅 준비를 하는 등 온통 촛불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즈음 광화문 근처에서 촛불시민들과 경찰을 뒤따라 다니며 취재거리를 찾고 있었다. 촛불시민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광화문 근처까지 진출한 시민들은 늘 자정 또는 새벽녁에야 해산 했다. 전경들이나 시민들 모두 할짓이 아니었다. 그게 다 미국산 광우병쇠고기 때문이었고 시민들은 '미친소'로 불렀다.

광우병쇠고기를 잘못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는 취지의 광고물이 홍수를 이루었다. 촛불을 취재하는 동안 곳곳에서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경찰들이 시위 군중들을 해산하기 위해 둥그렇게 진을 치고 저항하는 시민들을 몰아 붙이고 있었는데 경찰들이 애워싼 속에는 조중동 등 기자들이 안전하게 취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시위 도중에는 왠만하면 그들을 따라 다녔다. 좁은 인도 위에서 촛불시민들을 피해 이동하려면 꽤나 힘들었지만 전경들 속으로 다니며 사진 촬영등을 하니 편하여 가끔씩 써 먹었다.



그게 벌써 2년전의 일이었는데 케이검사의 전화를 받고 그때 일을 생각해 보니 도무지 기억이 잘 나지않아 2년전 포스트를 뒤적여 봤다. 그 속에서 케이의원은 경찰로 부터 패대기 쳐진(내동댕이 쳐진) 모습으로 나 뒹굴고 있었다. 그 즈음 서울지법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치검찰로 불리우는 검찰과 언론 등에 의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난리가 아니었다. 검찰이 허위사실로 기소하며 '한명숙죽이기'에 나섰으나 재판부로 부터 호된 꾸지람과 함께 이를 전하는 언론 등으로 부터 개망신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3월 22일 오후 2시 서울지법 바로 옆에 있는 서울지검으로 향했다. 케이검사가 있는 곳은 9층이었다. 서울에 살아도 검찰에 자주 갈 일이 없었던 촌놈이 서울지검에 들러 신분증을 제출하고 명찰을 건네받은 후, 9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경 얼마간을 헤아릴 수 있었다. 서울지검 바로 곁 서쪽에 대검찰청이 버티고 있었다. 그곳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굴욕을 당한 곳이었다. 내가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나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촛불시위 취재도중 에이의원이 경찰로 부터 폭행을 당한 것을 봤느냐 아니냐를 조사하는 것 뿐이었다. 괜히 이 포스트를 보고 겁 먹지 말기 바란다. 스폰서 검사도 있고 정치 검사도 있었지만 내가 만난 케이 검사는 스폰서 또는 정치라는 이름표를 달지않고 있었다.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라고 해 봤자 조사관의 물음에 예 또는 아니오 내지 구체적 증언을 하면 될 일이었다. 신상조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당시 경찰과 에이의원의 폭행 장면을 억지로 기억해 내며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를 반복했다. 그 시간이 3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아니,증언자 조사도 일케 오래해요?...(궁시렁 궁시렁)"
"네,...그렇습니다."

그리고 대강의 증언 조사 내용은 이랬다.

"...경찰이 에이의원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셨나요?'
"...네"
"폭행 당하는 장소와 시간은 어디였나요?"
"...광화문 근처...요"
"...그때 촛불님은 어디에 계셨나요?
"MBC...조중동 기자 등과 함께 요"
"에이의원의 위치와 촛불님의 위치는 요?"
"...약 10m 가량 될까요? 바로 코 앞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폭행은 어떻게 이루어 졌나요?"



"그러니까, 에이의원이 경찰이 막고 있는 저지선 뒤에서 항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메라 후레쉬 불빛이 매우 밝아 그 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경찰의 저지선 안으로 한 시민이 끌려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너댓명의 건장한 전경들이 양팔 또는 뒷덜미 머리채 등 발악하는 시민을 강제로 연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시민이 '국회의원을 이래도 돼?'라며 매우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며 그 시민이 민주당 에이의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경찰이 그랬단 말이죠?"

그때 조사관 옆에서 나의 증언을 가만히 듣고있던 케이 검사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니까요. 나쁜놈들이죠. 어떻게 경찰이 국회의원을 개 끌듯이 패대기 치며 연행하느냐구요."
"그랬다면 나쁘죠."

다시 증언 조사가 시작됐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에이의원은 취재 사다리 위에 있는 바로 내 앞에서 패대기 쳐 져서 내동이쳐 졌고 근처에 있던 호송차에 실려갔으나 앞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포스트에서 밝혔지만 하필이면 폭행장면 당시 켐코더 배터리가 소진되어 촬영을 하지 못해 이후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조사관과 케이 검사는 에이의원이 호송차에 실려갔다는 나의 증언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럴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의 기억은 그렇다고 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에이의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증언조사에는 이 사실이 빠졌고 당시 포스트는 오보가 된 셈이었다. 대략 조사가 끝나자 케이 검사가 나를 따로 불렀다. 공안검사의 입장에서 '촛불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정당한 시위였고 촛불을 꺼뜨린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보통 시민들과 다른 모습이었고 시위대 앞에서 주로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서두에 언급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몇몇 후배들이 프레스센터 근처에 함께 있었지만 전경버스를 무리하게 부수어가며 소방호스를 가져와 소화전에 연결하는 낮선 모습 등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단순히 성난 시민들이 아닌 모습이었다. 이를 테면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할 수 있게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조사는 3시간 30분 정도가 흘러 끝이났다. 마치 하루종일 촛불조사를 받은 기분이 들었고 다시금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케이검사에게도 같은 취지로 말을 남겼었다. 촛불?...뒤돌아 보고 싶지도 않은 사건이라고 했다. 그런데 촛불시위가 언제적 이야긴데 지금 나오나 싶어서 케이 검사에게 물어봤다.



"...사건이 벌써 2년전 일인데 지금와서 기소해요?..."
라고 했더니 케이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경찰이 지금까지 쥐고 있다가 검찰에 넘긴 거예요."
"흠...그렇다면 그 경찰이 나쁜넘들이네!..."  

    내가 보기에 에이의원을 고소한 경찰은 정말 질이 나쁜사람들 같았다. 2년전의 일을 지금까지 보류해 두었다가 기억이 날똥말똥 할 즈음에 고소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내 앞에서 국민들이 뽑아준 국회의원을 개 끌듯이 함부로 연행하며 패대기 치는 모습 등은, 국회의원에게 폭행을 한 경찰이 오히려 국회의원을 고소하는 어이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조사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 에이의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황당한 이야기가 나를 더 기분 나쁘게 했다. 촛불시위 당시 에이의원은 만신창이가 되어 경찰을 고소하려고 했지만 관할 경찰서장이 에이의원 앞에서 싹싹 빌며 용서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당시 에이의원이 강제연행 과정에서 당했던 폭행의 흔적이 다 지워진 지금 경찰이 고소자가 되어 에이의원을 고소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소사실이 뭐요?라고 물어봤다. 에이의원이 창피하다는듯이 말했다.

"...폭행!..."
"경찰을 때리기는 했어요?"
"내가 왜 경찰을 때려요?..."
"...그렇다면 폭행당했다는 경찰은 진단이 얼마나 나왔는데요?
"...2주...!"

(헉!...2주?) 나는 에이의원의 말을 듣자 마자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 나왔고, 에이의원도 겸연쩍은 표정으로 슬쩍 긁혀도 2주 진단서가 나온다며 씨익웃었다. 무슨 장잔도 아니었다. 경찰이 국회의원에게 폭행을 당해 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허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며 목이 달아잘 정도로 데미지를 입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눈탱이 밤탱이 되도록 얻어 맞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진단이 2주가 아니라 20주가 나올지도 몰랐다. 알고 보니 국회의원이 시위 도중에 한 시민이 연행되자 하으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해프닝이었지만 에이의원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진단 2주로 인해 기소를 당했다고 한다. 난생 처음보는 기이한 장면이 케이 검사로 부터 기소가 되었는지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연락이 오는 즉시 법정에 나가 다시 증언을 할 텐데 그때 기회가 닿으면 보다 자세한 후기를 올리려 한다. 본 포스트에서는 상당 내용을 생략했음을 참조 바란다.

요며칠 사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인데 천안함 침몰 참사 이후 이같이 해괴한 일이 더 잖아졌다. 반성을 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촛불을 반성하라고 하고 있고 잘 써 먹던 검찰이나 경찰 까지 개혁의 도마 위에 올려두었다. 비비케이와 4대강 사업으로 처음 부터 비뚤어진 대통령과 정권의 모습을 보니 촛불을 더 신랄하게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될 듯 싶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아무런 까닭도 없이 검찰이나 경찰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아무렴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그랬듯이 없는 사실을 일부러 만들고 공작정치를 통해 일반시민들이나 네티즌들을 잡아들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정말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과 정권은 따로 있다.
6월 2일은 심판의 날이자 소중한 주권을 정확히 제대로 해야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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