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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마약으로 망가졌던 '박지만'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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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관계자
1억4천만 달러 대출사건 노무현과 비교하니                 
       


  마약으로 망가졌던 '박지만' 진짜 이유?

나는 개인적으로 박지만을 미워해 본적이 단한차례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나와 같은 또래의 나이였고 그의 아버지 또한 나의 부친과 같은 또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동년배들이 누리고 있는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한체 마약과 씨름하며 청춘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곁에서 그를 지켜본 육사 동기생들이나 그의 비뚤어진 행동을 말리기에 바빳던 화랑대의 훈육관들에게 그는 골치거리였다.

아마도 육군사관학교에서 박지만과 같은 행동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던 생도는 육사가 생긴이래 더도 덜도 없을 부끄러운 역사와 다름없을 것이다. 생도의 입장에서 화랑대에서 권총을 들고 난동을 부린 사건은 일반 생도들 입장에서 보면 당장 퇴교감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행위로 구속 수감되어야 마땅할 생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훈육관들이 생도 앞에서 쩔쩔맨 사실 등은 오늘날 민주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사실은 쉬쉬하며 역사속으로 묻혀 버렸고 박지만은 틈만 나면 마약으로 망가진 모습이 언론 등지에 보도됐다. 구속했다가 풀어주고 구속했다가 풀어준 사건들 속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박지만이 화랑대에서 권총을 들고 날뛴 사건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오늘날 열사로 불리는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의해 사살되어 광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마약을 지속적으로 투입하지 않으면 살아갈 의욕 조차도 없을 정도로 망가진 이유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박지만 자료사진

그는 군사독재 대통령의 아들이자 아버지의 비밀을 너무도 잘 아는 외동 아들이었기 때문에, '왕자'처럼 총애를 받으며 자랑스러운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아버지의 비밀(?) 문서를 만지작 거렸을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박지만은 그 문서 때문에 이미 장래가 걱정되었을 터인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관동군(關東軍)에 관한 자료나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제2기로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한 아버지의 친일 행적 등 때문이었다. 아울러 그의 아버지가 행한 '한일국교정상화'는 매국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베트남 전쟁 파병은 젊은이들의 피를 팔았다는 비난까지 받기에 이른 사실 등은 박지만의 미래를 더욱 옥죈 것으로 여겨진다.

박지만은 그와 함께 아버지가 국민들의 바람을 무시한 채 권력을 연장하려했던 일과 함께 장기집권과 반민주적인 통치를 반대하는 학생과 지식인,종교인,정치인 등 민주화운동과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서 소외당한 노동자와 농민,도시빈민의 절박했던 생존권 요구를 긴급조치 등으로 억압함으로써, 국민의 저항에 부딪치며 마침내 김재규의 총성에 사라지는 모습을 두 눈을 뜨고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엊그제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 행적 때문에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참 불행한 일이었다.

박지만 자료사진

박지만이 어머니 육영수여사를 잃고 아버지 마저 총성에 사라지면서 졸지에 고아가 되었는데, 오늘(10일) 다시 아버지의 친일 혈서에 따른 '친일인명사전' 등재와 함께 아버지의 또다른 과거 행적인 한일국교정상회담에 '독도'를 일본에 제물로 바친 사실이 다시금 드러나고 있어서, 향후 한일국교정상화 등 박정희 정권에 대해 잘못 알려지고 미화된 역사적 사실 등이 얼마나 더 나타날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독도 문제의 관련 사실에 따르면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해 '독도'문제를 '제3국이 거중조정하는 안'을 일본측에 내놓아 협상안건이 아닌 독도를 '한일간 협상거리'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참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만만한 태도'를 간파한 일본 정부가 아예 '독도를 폭파하자'고 협박까지하며 '독도'를 협상안건으로 넣으려 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지난 1962년 9월 3일, 일본 외무성에서 가진 제 6차 한일회담에서는 일본은 일제피해자 협상과 전혀 관련없는 독도문제를 들고 나와 박정희는 독도문제는 협상안건이 아니라 했지만 독도를 안건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집요한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최근 이슈가 되고 있고 오늘 삽질이 시작된 4대강 정비사업이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문제 등을  '세종시 문제'로 희석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 매우 닮은 모습인 것이다.

독도 자료사진

따라서 이런 사실 등을 너무도 잘 아는 박지만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했고 괴로운 심경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는 마약에 의존하며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정은 박지만에게만 있는 게 아니어서 박근혜에게도 같이 적용되어 아버지가 독재정권을 통해 물려준 유산과 다름없는 정수장학회 재산을 잘 지켜야 했는데, 오늘날 엠비씨의 실질적인 주인과 같은 박근혜에게 재산을 잘 지키는 방법이란 정치 외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면 무리한 주장일까?

그런 박근혜가 겉으로는 이명박정부와 등을 돌리는듯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여전히 친이명박파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양다리 전술로 박지만을 지원했지만 결국은 박지만이 줄곧 해 왔던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담은 '인명사전'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무산됐고, 그토록 가슴앓이 했던 아버지의 부끄러웠던 과거가 다시금 도마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 되고 만 아니러니한 사건 속에 박지만과 그의 누나 박근혜가 던져져 있는 것이다. 내가 친일 혈서를 쓴 박정희의 아들이라도 박지만과 같은 고민에 빠지며 망가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박지만의 결혼은 이명박장로의 소망교회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박지만은 앞으로 다시금 망가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더 남았고, 아버지의 행적을 벤치마킹한 것 같이 쏙 빼 닮은 이명박대통령의 비민주적인 독재 행태로 인하여 박근혜와 더불어 박지만의 앞날이 매우 걱정되는 것이다. 박근혜는 대개 딸이 어머니의 운명을 닮는다는 일반의 우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며, 아들은 아버지의 운명을 닮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추어 박지만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운 것이다. 한번 쓴 역사는 다시금 되돌릴 수 없는데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국민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4대강정비사업 등을 감행하며 또 어떤 이들을 망가뜨리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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